냄비와 모래
냄비와 모래
  • 중부매일
  • 승인 2020.05.06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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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교사 이야기] 이창민 삼성중학교 교사

대한민국, 우리나라다운 것 하면 눈에 보이는 한옥, 가마솥, 청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가슴 속의 정, 한, 흥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한편 부정적이고 비하적인 표현으로 '냄비 근성, 단결 못 하는 모래알'이라는 표현도 있다. 그런 냄비와 모래가 좋아졌다. 냄비, 끓어야 할 때 화끈하게 끓고, 식어야 할 때 팍팍 식어준다. 시원시원하다. 예와 아니오가 분명하다.

모래, 바윗덩이가 깨지고 부서져서 더는 조각나지 않을 단단하고 야무진 알갱이가 돼 황토에 섞이고 시멘트와 비벼져 서로의 틈을 메우고 갈라지지 않게 붙들어 준다. 그렇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나랏빚 갚기 위해 장롱 속 금붙이를 기꺼이 내놓을 줄 알고, 월드컵 축구화의 엔진이 되고 지치지 않는 심장이 되고, 서해안 바위틈 기름때를 닦으려 손에 손에 걸레를 들고 청소부가 되고, 불의에는 정의의 촛불을 밝히는 모래들 그들은 냄비였다. 그러나 한곳에 오래 미련 두지 않고 떠날 줄을 안다. 흔적도 그리 남기지 않는다. 그렇게 냄비는 쿨하게 식어준다.

냄비가 식으면 가마솥 걸고 뭉근한 군불을 땐다. 오랫동안 식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임진왜란, 몽고항쟁, 일제 식민지의 한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그 한이 노(No)재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노래하고, 춤추고 신나지 아니한가? BTS, 미스·미스터트롯이 그렇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맞서 잠시 멈춰서야 했다. 갑자기 급해져서 마스크 구매 줄서기를 했다.

열 일 제쳐두고 냄비처럼 바글바글 끓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나라가 부러워할 만큼 방어하고 있지 않은가? 열 올리는데 하세월인 주변국들에 비하면 냄비 근성이 보약이었다. 지금의 어려운 경제 사정도 곧 나아질 것이다. 지갑 속에 묵혀 두었던 상품권을 들고나와 소상공인의 갈증을 풀어주는 단비가 되어 줄 것이다. 그사이에 생겼던 친구, 이웃, 직원들 간의 오해도 미움도 툴툴 털어 버릴 것이다. 그렇게 한국인은 의지와 행동이 빠르고 시원하다.

2020년 4월 9일 온라인 개학을 하고, 원격수업을 시작했다. 이러한 저력은 어디서 왔을까?

1996년께부터 교단 선진화 사업이 시작되고, 교실에 컴퓨터가 들어오고, 대형 TV가 걸렸다. 선생님들은 컴퓨터 활용 능력을 익히고 학생들은 이를 바라다보면서 자연스럽게 쓰임을 알게 됐다. 이 사업은 인터넷 활용, ICT 활용 시범학교 등의 교육 정보화 사업으로 이어져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금 유·무선 초고속 인터넷망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고, 손에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다. 참으로 놀랄만한 저력이 아닌가. 온라인 개학 공표 이후 서버가 다운되고 로그인이 안 되고 불만이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며칠을 밤새워가며 서버 증설하고 프로그램 탑재하고 힘들고 아쉽기도 하지만 우리는 해내고 있다.

이창민 삼성중학교 교사
이창민 삼성중학교 교사

그 사이 선생님들은 학교마다 실시간 원격수업 연수와 훈련이 자발적으로 이뤄졌고, 교사마다 웹캠을 달고, 스마트폰을 세우고, 헤드셋을 걸고, 동영상을 만들어 내고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해내고 있다. 유튜브에는 원격수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연일 쏟아져 나온다. 서툴지만 1주일이면 초보 떼고 한 달이면 프로다. 밤을 새워 해내고 만다. 이것이 한국인이고 대한민국 교사이다.

대한민국 교사가 자랑스럽다. '냄비 근성, 단결 못 하는 모래알'이라고 표현하지 말자. '냄비 정신, 모래알 의지'라고 말해야 옳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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