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칼럼] 박상준 논설고문

온 종일 비가 내린 어린이날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위해 찾은 대형식당은 한산했다. 평소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룸에서 먹기 힘든 식당이다. 식당 사장은 코로나19사태이후 종업원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아울렛 영화관으로 자리를 옮겨 티켓을 끊고 좌석에 앉을 때까지 직원은 딱 1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관람석엔 우리 일행 셋 뿐이니 '황제관람'을 한 셈이다. '극장발(發) 코로나쇼크'는 영업중단, 상영축소로 이어지고 멀티플렉스 3사는 희망퇴직, 무급휴직등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딸은 "지난 3월 인천공항의 국제선 탑승인원 14만2천명중 4만5천명이 항공기 승무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면 항공사에서도 연쇄퇴직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디어를 통해 불황의 현실을 접하는 것과 직접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은 느낌의 강도가 다르다.

경기침체를 넘어 불황이 엄습한 으스스한 기분이다. 로날드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에게 어느 기자가 경기침체와 불황의 차이점을 물었을 때 레이건은 "당신의 이웃이 실직당하면 경기 침체이고 당신이 해고당하면 경기불황이다"라고 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그게 경기불황이다. 요즘 '백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코로나사태이후 경제전망은 더 암울하다. 미국, 유럽, 중국도 실물경제 위기로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 경제석학들은 "세계 경제가 이렇게 멈추는 걸 본 적이 없다"며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우리사회도 어느새 해고폭풍과 실업대란이라는 벼랑에 몰려있다. 총선이 끝난 후 지급하고 있는 긴급재난지원금이 생활난을 겪고 있는 서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지는 모르지만 코로나 펜데믹이후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이 펼쳐지고 있다.

반시장적인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한 경제적인 체력이 고갈된 시점에서 코로나쇼크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특히 한국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40대이상 중장년들이 고용현장에서 방황하고 있다. 일터에서 활발히 일할 나이에 연차휴가 무급휴직 희망퇴직 정리해고등의 순서로 일자리를 떠나고 있다.

악착같이 직장을 찾으려 하지만 10명중 여섯 명은 장기실업상태(전경련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다. 그동안 쌓은 경력도 포기하고 단순노무직 일자리라도 찾으려고 해도 쉽지 않다. 이들은 퇴직 당시 임금(월 315만원) 대비 77% 수준(244만원)이라도 받겠다며 취업문을 두들기고 있지만 상당수는 포기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꿈도 못꿀일이다.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산업생산량이 감소하고 성장하던 회사들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내미는 카드는 인력감축이다. 이로 인한 대량 해고와 실직은 가계경제를 허물어트릴 수 있는 뇌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경기 부양책으로 '한국판 뉴딜'을 제시한 것은 극심한 경기 침체를 타개하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29년 대공황으로 회사들의 파산도미노와 실업률이 25%로 치솟자 '미국인들을 위한 뉴딜'을 주창하며 해결책을 내놓았다. 당시 그에게 가장 골치 덩어리는 약 1500만 명에 달한 실업자 구제였다. 루스벨트는 오랜 전통인 자유경쟁의원칙을 버리고 '컬렉티비즘(Collectivism, 집산주의)'으로 무장한 뉴딜정책으로 위기를 돌파하며 민주당 30년 장기집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뉴딜'은 경기부양의 문을 여는 만능열쇠가 됐다. 여러 국가에서 벤치마킹했으며 우리나라 역대정권도 '뉴딜'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써먹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MB정부는 '중산층 국가를 위한 휴먼 뉴딜 프로젝트'를, 박근혜 정부는 '스마트 뉴딜'을 채택했다. 하지만 모두 별다른 성과도 못낸 채 소리 소문 없이 퇴장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고문

참여정부의 시즌 2가 될 이 정부의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과 확장된 개념의 SOC사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비대면 산업과 디지털 산업은 기기 중심의 산업이라 경기부양도,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을터다. 한국판 뉴딜이 일자리의 해법을 제공할지, 아니면 루즈벨트식 뉴딜의 흉내만 낸 채 국민들에게 좌절을 안길지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와 역량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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