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체코 프라하의 성 니콜라스 성당
체코 프라하의 성 니콜라스 성당

며칠 전, 친구가 딸을 데리고 나와 잠시 만난 적이 있다. 아이와 어쩌다 산타클로스를 주제로 이야기하게 됐다.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정도로 컸지만, 아직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아이에게 산타를 아직 믿느냐고 놀려댔다. 내 어린 시절에 그의 존재가 아버지였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받았던 그 충격은 너무 컸던지라, 친구의 딸에게는 그가 허상의 인물이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산타를 이야기할 때면, 먼저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곤 한다. 아이가 산타의 존재를 이미 알고있는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타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언제나 아이와 오묘한 심리전이 시작된다.

친구 딸아이는 오물거리는 입으로 산타는 있다고 계속 주장했다. 다 큰 숙녀가 아직 산타를 믿고 다닌다고 사람들이 친구 딸아이를 너무 놀려대는 통에 나는 아이의 편에 서고 싶어졌다. 나는 아이가 정말 산타를 모르고 있다고 그제서야 확신했고, 산타를 얼마 전 보았다고 말을 꺼냈다. 순간 주변에 정적이 일었다. 아이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아이의 눈을 읽을 수 있었다. '아저씨. 거짓말쟁이. 나도 알아요. 산타는 없어요.' 그렇다. 사실 아이도 알고 있었다. 다만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 갑자기 기억났다. 나 역시 아주 어릴 적, 산타의 존재를 알아버린 순간, 산타가 세상이 없다는 슬픔에 빠져있기보다는 앞으로 산타를 위장한 부모에게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나는 산타를 믿는다며 부모님에게 일부러 인지시켰던 기억이 난다. 물론 부모님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어린아이에게서 산타클로스는 매년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최대한 오랫동안 부정을 해서는 안 될 존재였던 것을 아이를 통해 다시 깨닫고 말았다.

이렇게 전 세계 어린아이들이 굳게 믿고있는 산타클로스의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왔을까? 3세기경에 성 니콜라스(St. Nicholas)라는 성인이 있었다. 그는 터키 남동쪽 해안에 있는 리키아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기독교 성직자였다. 그는 종교적 박해를 이겨냈기도 했지만,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호의를 베풀었던 수많은 행적들이 그를 성인 반열까지 올려놓았다. 돈이 없어 세 딸이 사창가로 팔려갈 위기에 처해있던 사람에게 몰래 금이 든 자루를 주어 딸들을 구해주었던 성 니콜라스의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이 사연은 여러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유럽을 비롯해 세계 전역으로 퍼져 현재는 한 밤 중에 몰래 아이들을 위해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가는 산타클로스 모습으로 완성됐다. 그렇게 훗날 우리는 일 년 중 예수가 태어난 크리스마스에 산타도 동참시켜 사람들과 선물을 나누고, 베풀었다.

뿐만 아니라 그를 기념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많은 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성당을 지었다. 그림의 건축물은 체코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 지구에 있는 성 니콜라스 성당이다. 이 성당은 원래 고딕양식의 성당이었지만, 화재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1704년부터 새로 짓기 시작해 1755년에 완공됐다. 건축적인 특징은 일반 바실리카 양식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바깥과 안이 금장식으로 도배되어 있어, 화려함은 그 어떤 유럽의 성당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성 니콜라스 성당은 산타의 미덕으로 예술이 된 건축이다.

올해는 4월에 눈이 내리더니 5월이 되자 더위가 급하게 찾아왔다. 추운지도 모르고 지나가 버린 올해 겨울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외투를 벗고 선물을 나눠줬을 거라는 시덥지 않은 생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그를 걱정하고 말았다.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그러다가 뜬금없이 아이와 나누었던 작은 논쟁에서 5월에 다시 산타를 불러냈다. 어린이 날이기도 해서 선물이야기가 나오다보니 갑자기 산타클로스가 생각이 난 모양이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산타클로스라는 갑작스런 주제에 아이와 심리전에서 패했다. 이제는 아이 앞에서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의 마음으로 5월을 맞이하겠다. 나도 아직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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