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수필가

지인의 초대로 일산 외곽 다육이 농장에 가서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운 열대식물을 감상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으로 갔다. 일산에 살 때는 자주 가던 곳이지만 3년 전 감악산에 출렁다리가 건설되어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이어서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경순왕릉을 갔다. 마을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다 보면, 후삼국의 궁예, 견훤, 왕건 그리고 경순왕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 제56대 마지막 왕인 경순왕릉은 임진강 건너 개성과 가까이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장단군이었으나, 휴전 후 연천군 장남면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고, 비무장지대로 출입이 제한되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왕릉 근방에 개성이 30㎞, 평양 173㎞라고 적힌 이정표를 지나면 능이 있다. 경순왕릉은 개성의 동쪽이며, 남방한계선 200m 아래의 야산에서 비운의 한을 삭이듯 밤낮없이 임진강 하구만 그윽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항복한 지 43년 만인 고려 경종 3년 세상을 떠나 경순(敬順)이란 시호를 받고 이곳에 묻혔으나 그 후 800여 년간이나 잊었다. 그러다가 조선 영조 때 김성운 등에 의해 '시호 경순왕을 왕의 예우로 장단 옛 고을의 남쪽 8리에 장사 지내다' 라는 비문의 묘가 발견되었다.

경순왕릉을 나와서 파주시 적성면 근처에 있는 영국군 설마리전투비에 들렸다. 이 전투비는 한국전쟁 당시 설마리 전투에서 고지가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혈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리고자 건립하였다. 나라가 망하면 군주도 백성도 서러움에 살아야 한다. 70년 전 6·25전쟁 때 유엔군의 도움으로 세계 각국에서 군인과 물자 지원을 받았다.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영국군의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와 제170 경박격포대 소대 장병들은 1951년 4월 22일 경기도 파주시 설마리의 설마계곡에서 북한군과 중국군에 포위되어 4일간 격전을 치른 끝에 622명 중 39명만 살아 돌아왔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참전한 영국의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린다.

6·25 전쟁 중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 평양진격 등의 참상(慘狀)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들을 위해 전쟁의 아픔을 잘 지도해야겠다. 유엔군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우리는 지금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들의 땀과 죽음이 대한민국과 세계의 평화를 지켰다. 전쟁 당시 16개국에서 전투 병력과 5개국에서 의무지원병 등 180만 명의 군인을 보내주었고 4만여 명이 전사했다. 우리 모두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기 위해, 피 흘린 젊은 병사들에게 감사함을 잊지 말자.

신라가 망하고 나라를 고려에 넘긴 경순왕의 묘비를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분들과 6·25 전쟁으로 숨져간 국군과 외국 군인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나라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플루타크 영웅전은 '법과 정의는 제우스 신과 나란히 앉아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그대로 법이고, 정의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지만 안정된 유일한 국가란 온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어지러운 시대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인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 모두 나라의 운명은 청소년들의 교육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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