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얼마 전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수술했다. 겁이 많은 난 아픈 손가락이 신경이 쓰여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5년 전에도 같은 증상으로 다른 손가락을 수술했지만 더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하면 수술을 안 할까, 좋다는 것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침마다 또는 자다가 깨어 손가락 타령을 하는 나를 아내는 좀 힘들어 하는 눈치였다.

"박자기, 일어나봐. 손가락 좀 봐. 수술해야겠지?"

새벽 2시도 좋고 4시도 좋고, 또는 아침에 일어나면 첫 마디가 손가락에 관한 이야기였다.

만약 밤에 눈을 안 뜨고 대답을 안 했다간 아내는 쉬이 잘 수가 없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남편한테 관심이 없느니, 또는 "충성만 하고 살았는데, 용돈도 주는 대로 받았는데…"라며 잔소리 폭탄을 날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싶으면 "비싼 옷도 안 사 입는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등 구시렁구시렁 핵폭탄을 은근 날린다.

이런 나를 간파한 아내는 껌 딱지처럼 붙은 잠을 억지로 털어 내며 "물리치료 받으니까 곧 좋아질 거야"라며 애써 위로해 준다. 그렇게 며칠 위로는 통했지만 며칠 후 그 위로도 유효기간이 끝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굳은 결심을 하고 병원을 찾아 수술을 했다. 경험이 있는 데도 마음도 손도 달달 떨렸다. 더 오래 시간이 흘렀다면 영혼까지 탈탈 털릴 뻔했다. 수술 후 반 깁스를 하고 옆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아내는 앞으로 손가락 잔소리를 듣지 않을 홀가분함 때문인지 커피가 맛있나 보다. 냉커피를 홀짝홀짝 잘도 마신다. 얼음까지 와작와작 깨물어 먹을 태세다. 나는 수술을 잘 마친 내 자신을 위로하며 뜨거운 커피를 아주 천천히 마셨다.

하지만 2주후 실밥을 풀은 지금도 여전히 나의 잔소리는 유효하다. 실밥을 푼 자리에 연고를 발라야 한다. 나는 집게손가락을 아내에게 내 놓고 발라달라고 한다. 그것도 무서워 손가락을 파르르 떠는 내가 웃긴가 보다. 그럼 나는 "지금도 얼마나 아픈데…"라고 푸념을 하며 함께 웃는다.

수술 직후 아내는 옷을 입을 때도, 머리를 감을 때도, 등이 간지러울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거의 다 나의 손 역할을 해주었다. 동화 속 왕자가 부럽지 않을 정도의 대접을 받았다.

"박자기, 내가 이 다음에 자기 아프면 다 갚을게. 자기 아프지 마."

"걱정 마. 내가 자기보다 건강해서 오래 살 테니까. 자기나 신경 써."

몇 년 째 저녁마다 헬스클럽으로 운동을 다니는 아내는 건강한 편이다. 한날은 외출 후 들어오니 무거운 가구도 가전제품도 혼자 옮겼단다. 내가 슬쩍 들어봐도 들 수 없을 정도인데, 운동을 하면 정말 힘이 세지나 보다. 계속 운동을 한다면 말괄량이 삐삐처럼 말이나 냉장고도 번쩍번쩍 들지 않을까 싶다.

손가락을 많이 사용해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손이 굳는다며 열심히 손을 사용하란다. 여전히 잘 구부러지지 않는 집게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 한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양치질을 하려해도, 펜을 잡아도, 숟가락을 잡아도 눈물이 찔끔 나려한다. 평상시에는 잘 몰랐는데 손가락 하나가 아프니까 생활이 힘들다. 심지어는 책장을 넘기는 것도 힘들다. 무엇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아내의 손길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집게손가락이 다 나으면 앞으로 아내의 가려운 등은 평생 긁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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