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박성진 사회부장

'총포경'. 일반인들은 생소한 단어다. 신조어도 아니다. 그저 경찰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줄임말이다. 총포경은 '경찰 내부에서 정년만 기다리며 총경 승진을 포기한 경정'을 말한다.

이 줄임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돼 있다. '정년만 기다리며~'에서는 업무는 안 챙기고 그저 퇴직날 받아놓은 간부 경찰관이라는 비아냥이 엿보인다. 일반적인 얘기는 아니다. 그들을 폄훼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총경을 포기한 경정'이라는 부분에서는 알 듯 말 듯한 함의가 숨어 있다.

굳이 경찰 내부에서 특정 계급을 꼭집어 '포기'라는 부정적인 단어까지 써가며 줄임말을 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방청에서 경정 계급은 중간 관리자 겸 실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중간 간부로서 '계'를 이끌며 성과를 내는 선봉에 서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업무를 잘하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실수라도 하면 온전히 독박을 쓰는 자리다.

경정 계급은 직위(職位) 측면에서는 총경으로 가는 직전 단계다. 직급(職給)으로 설명하면 통상 당위 계급 7년차 때부터 총경 승진 후보군에 들어간다. 직위에 부여한 직무와 책임을 뜻하는 직책(職責)으로 볼 때는 주요 보직을 꿰차기 위한 '빽싸움', '줄서기', '눈치작전' 등이 총동원된다. 통상 경정 10년차부터는 총경 승진이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 이 시점에 들어간 경정도 '총포경'이라고 부른다.

경찰은 '계급정년'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경정 14년차 안에 총경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당연 퇴직하는 것이다. 경정 계급부터 적용해 총경(11년), 경무관(6년), 치안감(4년)도 자유롭지 못하다. 계급정년에 걸려도 '총포경'으로 분류된다.

사실 '총포경'이라는 별칭은 대놓고 쓰이는 단어는 아니다. 누군가를 지칭할 때 은어(隱語)처럼 사용되는, 다소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그렇다보니 총경 승진을 노리는 경정들의 애환은 눈물겹다.

두어달 전 씁쓸한 내용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갑질 사각지대'를 취재해 보라는 취지였다. '총포경'에 들지 않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경정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말하는 것이었다. 제보 내용은 구구절절했다. 누구는 이렇고, 어떤 이는 저렇고, 저이는 어떻고 등등의 설(說)이다.

몇몇 경정들이 '갑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인사평정권자 눈밖에 나서 허구한 날 '깨진'다는 것이다. 미진한 업무 처리에 대한 지적을 빙자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제보자는 마구 떠들어댔으나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부했다. 혼내기 위해 잘못을 찾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경찰 조직내에서 경정 계급은 애매하다. 눈치주는 총경과 치받는 경감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경정은 구조적으로 갑질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오는 6월 11일 출범하는 '경찰 직장협의회'에도 경감 이하 계급만 가입할 수 있다.

박성진 사회부장
박성진 사회부장

과거 경찰에서 고질적으로 횡행하던 갑질 행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 '현장활력회의'에도 경정 계급은 참여할 수 없다. 경정은 갑질을 당해도 하소연할 때가 없다. 무조건 감내해야 한다. '총포경'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총경 승진이 절실한 경정은 더욱 그렇다. 총경 승진이 실력보다는 '순번'에 우선하다보니 생겨난 부작용이다. 숫자놀음에 밀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결재판을 들고 뛰어다니는 '미움 받는' 경정들을 응원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