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지난 늦가을 화원에서 꽃배추 네댓 포기를 사왔다. 큰 길가 화분에서 자주 보던 것들이다. 한겨울 무채색 세상에 원색을 보기 위함이었다. 자주 보라 노랑이 밋밋한 겨울에 내 눈을 즐겁게 해 줄 것이었다. 한 해 전에 겪어 본바 있어 그 효과를 넉넉히 알고 있었다. 지난 해 겨울은 그리 춥지도 눈이 많이 내리지도 않았다. 평년보다 열흘은 서둘러 봄이 찾아왔다.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으로 시작된 봄에 꽃배추의 원색은 이미 낡고 희미해져 있었다.

아내는 꽃배추들을 뽑아내자고 했다. 그때 문득 '토사구팽'이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그 말처럼 처지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말도 드물게다. 수직관계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아래서는 억울하고 부당한 처사를 당한다는 느낌이지만 위에서 볼 때는 상황변화에 따른 정리로 당연히 할 일을 한다는 격이다. 한 가지를 두고 양쪽 이해에 너무 격차가 크다.

꽃배추도 긴 겨울 무채색의 밋밋함을 온 몸으로 막아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더니 봄꽃이 나오자마자 뽑아 버리나. 함께 봄을 즐기면 큰일이라도 나나하고 항의할 것 같았다. 마음이 약하고 어느 것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나는 뽑아내지 말고 얼마간 꽃배추를 두고 보자 했다. 봄은 날마다 힘을 써 겨울을 멀리 몰아내고 따뜻함을 잔뜩 몰아왔다. 어느 날이었던가, 겨우내 바닥에 붙어있던 꽃배추가 일어서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키를 늘이더니 40~50㎝에 이르도록 자라났다. 밋밋함에 자극적 맛을 내준 겨울도 좋았지만 예상을 깨는 봄날의 성장도 흥미로웠다.

나는 키 작은 것들에 애정을 갖고 있다. 작은 키가 한순간에 쭈욱 늘어나는 것에는 남다른 쾌감이 일었다. 숨겨진 그들 능력을 과시하는 듯했다. 봄비가 거세게 내린 어느 날인가는 한 포기 배추대가 땅에 눕는가 싶더니 누운 채로 자라고 있었다. 쑥 치켜 올라온 대궁에서 삐죽한 것들이 툭툭 불거지더니 얼마 전에는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개나리에 뒤지지 않는 샛노란 색깔로 한 포기 배추에서 꽤 많은 꽃들이 피어났다. 아래로는 대궁을 따라 솟아난 하얀 이파리들, 위로는 노란 꽃들이 가득하다. 이파리도 꽃처럼 보여 바닥부터 온통 한 떨기 꽃 같다.

배추나 무의 꽃대나 그곳에 핀 꽃들을 '장다리'라 부른단다. 장다리, 긴 다리라는 걸까, 꺽다리와 키다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바닥에 붙어 자라나다 갑자기 쑤욱 자라나니 그렇게 부른 건지 모르겠다. 제때에 뽑아내지 않았더니 뜻밖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자연의 모습들이 얼마나 많을까. 사람들 삶의 이치는 그보다도 훨씬 복잡한 듯하다. 세상의 이치들이 때로는 호흡이 짧은듯하다 가도 한없이 길어 보이기도 한다. 인간사 새옹지마요 전화위복이라 하지 않던가.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세상이 멈춘 듯했다. 이 높다란 고개도 넘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힘 다해 대응하니 모범국가라 하고 방역으로 나라의 격이 높아졌다 한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꽃이 피어도 찾아갈 수 없었던 한 해 봄이 있었음을 긴 세월 지나 회상할 수 있으려나. 집안에 머물러 화면으로 보는 꽃들은 더욱 화려하고 빛나는 원색이었다. 이 가난한 봄에 나는 집안 화단에서 꽃배추가 일어나 장다리가 되고 위아래로 찬란하게 피어나는 또 다른 꽃을 보았다. 꽃배추에 피어난 꽃 배추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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