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올해 나는 텃밭을 분양받아 채소를 키운다. 이 텃밭에는 나처럼 분양받아 소작농을 하는 사람이 40여명 있다. 분양받은 사람들 간에 구역의 경계에 대한 분쟁의 소지가 없다. 텃밭을 운영하는 주인이 각자의 구역을 분명하게 지정해줬기 때문이다. 텃밭의 구역은 '내가 분양받은 땅'과 '타인이 분양받은 땅'을 명확하게 구분해주는 경계선이다. 경계선 덕분에 내 텃밭이 타인에게 침범당할 우려가 없어 편안하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팬데믹 쇼크에 빠져 있다.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아 전염을 막기가 어렵고 감염이 두렵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 질서를 혼돈으로 내몰고 인간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코로나19에 감염된다는 것은 내 몸의 경계가 바이러스에 뚫렸다는 의미다. 내 몸의 경계를 바이러스로부터 지키지 못한 대가는 혹독하고 치명적이다.

집집마다 담벼락이 있고 국가 간에는 국경이 있다. 담벼락과 국경은 '나와 내 것'을 '타인'으로부터 지키겠다는 물리적 정체성의 마지노선이다. 집주인이 외출할 때는 문단속을 하듯 각국의 국경에는 군인들이 중무장을 한 채 엄중한 경계근무를 하며 지킨다. 담벼락과 국경이 허술하면 침탈과 수탈을 당하는 삶을 살게 된다. 담벼락과 국경이 튼튼해야 오롯이 내 삶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

자아에도 경계가 존재한다. 경계가 있기 때문에 나의 생각, 취향, 감정, 욕구를 상대방의 그것과 구분하며 개별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문요한은 경계를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하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라고 말한다. 마음의 경계선은 나를 타인과 식별하게 해주고, 나를 타인으로부터 보호하게 해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아 인식하기가 어렵고 지키기는 더 힘겹다. 마음의 경계가 희미하면 타인이 자기를 조종하는 것을 방치하게 되고, 자기도 타인의 마음에 침범해서 마구 짓밟게 된다. 관계의 경계선이 희미한 친구를 두게 되면 "얘, 네가 하고 있는 스카프 참 예쁘다. 이런 얘기 들으면 눈치껏 알아서 줘야 되는 것 아니니"라는 황당한 말을 느닷없이 듣게 되고, 스카프를 알아서 주지 못한 핀잔까지 뒤집어쓰게 된다. 이럴 때 마음의 경계가 명확하게 세워져 있다면 "내 나이 정도 되면 네가 하는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래."라고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의 경계가 세워지게 되면 타인이 내 마음을 함부로 침범하여 휘젓지 못하도록 지켜주고, 나도 타인의 마음을 존중하게 된다. 마음의 경계 세우기는 자기에게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해로운 것은 내보낼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준다. 관계의 경계 세우기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내 마음에 타인이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고, 타인의 욕구만 충족시켜주는 머슴의 삶을 살게 된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제라르 맨리 홉킨스 시인은 "나의 경계선은 나만의 내밀한 정체성을 보호하고 나의 선택 권리를 지켜준다."고 했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욕구, 재능, 가치를 아는 것이고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마음의 경계를 세우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나와 내 삶을 지키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삶의 방식이다. 마음의 경계는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너'인지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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