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유창선 시인

미원으로 귀촌한지도 벌써 4년째 늘 조용하든 집안이 꼭두새벽부터 시끌벅적하다, 코로나 19로 인해 휴교 중에 내게 다니러 온 손주 녀석들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자마자 형제끼리 티격태격 다투는 소리이다.

시계를 보니 여섯 시다 일어나 산행할 시간, 물 한 모금 마신 후에 산행 준비를 한다, 늘 산에 오를 때마다 마음이 바쁘고 분주하다. 등산 바지에 등산용 자켔을 입고, 두 손엔 스틱 들고 물 한병 달랑 배낭에 넣어 짊어지면 준비 끝이다. 거실 문을 열고 나서는 날 바라보든 큰 손주 녀석이 "할아버지 어디가"하며 묻는다. "할아버지 뒷동산에 올라 가는데 너도 함께 갈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나도 가"하며 따라나선다. 둘째와 셋째 손주 녀석들도 "나도 나도"하면서 따라나섰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우리를 빤히 바라다보던 앞마당 금동이 녀석도 함께 산에 가겠다고 끙끙거린다. 금동이에 목줄을 풀어주자마자 제일 먼저 앞장서서 산으로 내어 달린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고 산새 소리도 정겹다, 연둣빛 새싹들이 오늘따라 유난스레 곱고 아름답다. 아마도 오늘 아침은 손주 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라 즐거워서 모든 것들이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이나 보다. 손주 녀석들은 즈이들끼리 떠들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거칠 것 없이 산을 오른다. 때로는 웃고 떠들고 다투기도 하면서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서로서로에게 묻고 대답하고 때로는 내게 가당치도 않은 질문을 던지면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산을 오른다, 녀석들은 숨도 차지 않나 보다.

산에 오르길 50여분 저만치 오늘에 목적지가 보인다, 가쁜 숨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 실안개 자욱 깔린 봄기운 가득한 대덕리 이웃마을을 내려다본다. 한 폭에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 아름답고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모습이 경이롭다.

한참을 머물다 하산하는 길, 주변에 취나물, 참나물, 우산나물, 병풍취 등 산나물이 지천이다. 아침 식탁에 취나물 무침을 무쳐볼까 하고 취나물을 뜯는데 큰 손주 녀석이 무얼 뜯느냐고 묻는다. 아침 식탁에 취나물 무쳐서 너희들에게 맛난 반찬 만들어 주려한다 하자 세 녀석이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온 산 취나물이란 취나물은 다 뜯을 기세로 숲 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십여분 그렇게 뜯은 취나물이 배낭에 거의 차 갈 무렵, 숲 속이 갑자기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기다리고 기다리든 단비다, 서둘러 하산했지만 모두들 비에 흠뻑 졌어 새양쥐 꼴이다.

그런데도 손주 녀석들은 오랜만에 내리는 단비가 마냥 좋은가보다. 산행 후 피곤하고 지칠 만도 한데 금동이 녀석과 함께 앞마당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이 났다. 도대체 집안으로 들어올 마음들이 없나 보다. 이제 그만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코로나 19로 인하여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 놀지도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지냈으니 저렇게 넘쳐나는 에너지를 해소하지 못해 얼마나 힘들고 갑갑했을까 하는 생각에 내버려 두었다.

유창선 시인
유창선 시인

창밖에 떨어지는 봄 비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손주 녀석들에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무척이나 행복하게 들리는 아침이었다.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코로나 19가 우리 지구촌에서 사라져 어린이들 모두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활기찬 그날이 오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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