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선 '육아맘 맘수다' 시민기자

우리 아이는 말이 조금 늦었다. 그냥 단순히 늦었다고 하기에는 주변의 우려가 많았다. 나에게도 분명 불안함이 있었다. 그 불안함에 이어 아이의 24개월 영유아 검진에도 그 불안감은 여실히 드러났다. 결국 아이의 발달에 부족함이 많다는 결론을 듣게 됐다.

전반적인 부분에서 대다수 부진의 결과를 듣고 망연자실할 수만은 없었던 것은 지금 내 감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아이가 올바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아과 원장님의 소견서를 들고 충북대학교 병원을 향하며 부딪쳐야만 하는 일련의 과정들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무겁게 만드는 것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제일 컸다.

우선적으로 충북대병원에서 언어검사와 베일리검사를 받고 담당의의 소견에 따라 2개월의 언어치료를 받게 됐다. 나름 많은 대화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아이는 나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고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단어나 표현력이 굉장히 부족한 상태였다. 내 민낯이 완전히 까발려지는 순간, 눈물이 나오기 보다는 창피함이 먼저였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나를 스스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아이의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자각한 첫 번째였다. 우선 아이의 말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놀이와 생활에서 많은 교류를 하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충북대병원에서는 그 나름대로 놀이를 통한 언어치료를 이어갔고 나는 나 나름대로 집안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하루에도 몇 백 번씩 불러준 아이의 이름을 가지고 동요에 개사를 하며 불러주고 그간 감추고만 있던 나의 감정도 솔직하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보여주지 않던 동화책도 시간을 맞춰 읽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나가 모르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시작했다.

말 자체로 아이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았다. 어른인 내가 사용하는 말과 아이의 손짓, 발짓은 분명히 '다른' 언어였다. 나는 아이의 표현을 빠르게 이해하려 최선을 다했다. 어른의 언어를 가르쳐주기 위해 다양한 도구들을 이용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배려했다. 병원에는 일주일에 한 번, 30분간 이루어졌는데 나는 그 시간동안 꼭 같이 공간에 들어가 선생님이 하는 모든 것들을 내 눈에 담고 머리에 기억하려 애썼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그날 했던 모든 놀이와 말투, 행동들을 아이에게 다시금 기억하게 해주었다.

내가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바로 아이와 함께 하는 시내버스 투어였다. 시내버스 투어는 7살인 지금도 그때의 기억과 학습적인 부분이 이어져 아이의 말이 트이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여기는 부분이다.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 다양한 사람들의 움직임, 다양한 색감의 온 세상을 버스 하나면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굳이 말로 내뱉지 않아도 아이는 눈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을 말로 표현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 말을 내뱉도록 기다려주는 시간이었다.

병원을 2개월 정도 다니고 나는 더 이상 병원 진료를 받지 않았다. 상담센터에도 다녀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아이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비록 워킹맘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와의 시간을 늘리고 조금씩 아이 스스로 말을 할 수 있기를 기다렸다. 그 시간은 켜켜이 쌓여 우리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선물해주었다.

그렇게 1년 정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 시내버스를 타며 운전기사님께 "안녕하세요?"를 해맑게 말하는 아들 녀석을 보며 나는 행복한 눈물이 났다. 지나가는 바람에게 인사를 하고 흔들리는 꽃나무에 춥겠다며 안쓰럽다 하는 녀석과 함께 하는 요즘 나는 참 행복하다. 언어지연으로 병원까지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면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는 7살의 수다쟁이 아들 녀석.

말이 늦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해답은 그 무엇에 있지 않다. 언제 어디서든 아이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물어주고 답을 함께 찾아내는 해답지는 바로 '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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