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五百羅漢)' 전시를 보았는데, 경북 청도군 운문사에 오백나한이 있다 해서 방문했다. 이 사찰은 1천 500년 전, 신라 진흥왕 21년에 한 신승(神僧)에 의해 창건되어 원광국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그리고 비구니 대학장인 명성스님의 중창불사에 의하여 잘 관리되고 있다.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180호인 처진 소나무와 금당 앞 석등 보물 7점을 소장하고 있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다.

운문사의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은 석가모니불을 주불(主佛)로 하여,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 가운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성자들을 봉안했다. 그러나 사찰에서는 오백 제자만을 숭배하기보다 십대 제자, 십륙나한 등도 존경을 표한다. 우리나라에는 운문사 나한전 외에 영천 은해사 거조암에 석조 오백나한을 모신 법당이 있고, 영월 창령사 터에서 오백나한을 발견했다.

이번에 찾은 운문사는 신라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한 장소로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이다. 고려 시대에는 일연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삼국유사의 밑그림을 그리고 완성한 곳 또한 운문사다.

이어 경북 청도읍성을 갔다. 조선 시대 왜구의 침입이 많아 전국적으로 당시에 지어진 읍성이 많다. 그동안 서산의 해미읍성과 순천의 낙안읍성을 다녀왔다. 앞서 찾았던 해미읍성과 낙안읍성은 사람들이 살기도 하고, 복원을 잘하여 그 지방 명소로 관광객들이 많았다. 그런데 청도읍성은 이와는 달리 도시의 확장으로 성벽 일부와 기저만 남아 있고 복원 중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글감도 얻고 여행을 다니는데, 아직도 국내 명소를 안 가본 곳이 많다. 운문사의 오백나한전과 청도읍성은 귀한 문화자원이다. 그리고 청도군에 신라 화랑의 발상지가 있다. 한가한 청도의 운문사 입구 소나무숲 아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걷고, 청도읍성의 성벽 길을 걸어보았다. 사색의 길이란 그 향하는 바가 먼저 있고, 무수한 발걸음으로 다지고 다져서 이루어진다. 시골길을 걷다 보면 추억도 만들고 또한 자신의 삶을 더 의미 있고 풍성하게 해준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나만의 휴식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케렌시아(Querencia)가 필요하다.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피난처·안식처라는 뜻으로, 원래는 마지막 일전을 앞둔 투우장의 소가 잠시 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재충전 공간이란 뜻으로 사용한다. 필자는 종종 케렌시아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커피나 와인 한잔하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 취미가 있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럴 때 케렌시아를 생각하며 여유를 찾아보자. 가장 어두운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숨어 있는 평화와 희망하는 기쁨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 사람이 보인다. 함께한 사람의 면모를 알게 되고 내가 보인다. 여행은 부족한 나를 채우고 새로운 만남을 통해 모르고 있던 것도 알게 되는데, 여행이 아니면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의미 있는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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