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통합시' 현실 간과한 도시계획 조례 개정안

[중부매일 박재원 기자] 청주지역 산지 개발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발의된 도시계획 조례 개정안을 시의회에서 부결한 결과를 가지고 말이 많다.

옛 청주시와 청원이 행정구역을 통합한 도·농복합도시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당연한 결과다.

시의회는 지난 26일 임시회(53회) 2차 본회의에서 김용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청주시 도시계획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표결을 통해 부결했다.

해당 상임위원회인 도시건설위원회에서 수정 의결한 사안을 의원들이 본회의에서 뒤집은 이례적인 사례다.

무분별한 산지개발을 막겠다고 발의된 이 개정안은 토지 형질변경 허가기준 중 평균경사도를 기존 20도 미만에서 15도 미만으로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했을 때 임야의 각종 개발행위는 크게 제약받는다. 당연히 토지 소유자는 재산권 침해라며 거세게 반발했고, 도시건설위는 녹지 보존과 반대 여론을 고려해 단서 조항(경사도 15~20도 토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을 달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 절차에 들어갔다.

의회 안팎에서는 개정안이 발의되고, 상임위 동의를 얻은 그 자체가 행정구역 통합시를 간과한 섣부른 행동이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아까운 산허리를 파헤쳐 전원주택 등으로 개발하는 행위에는 다들 제동이 필요하다고 공감하지만 현재의 청주시는 2014년 7월 옛 청주시와 청원군이 합친 행정구역 통합시라는 전제 조건이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2019년 발행한 지적통계연보를 보면 청주는 도내 11개 시·군 중 행정구역 대비 임야비율이 증평군 다음으로 두 번째로 낮다.

전체 940㎢에 임야는 466㎢로 49% 정도에 불과하다. 임야비율이 가장 낮은 증평은 48%다.

산지 개발행위를 억제할 당위성은 충분하나 옛 청원군 지역을 따져봐야 한다.

통합 전 청원군의 임야면적은 436㎢였다. 현재 청주 전체 임야의 93%가 모두 옛 청원군 땅이라는 의미다.

당시 개발행위 허가기준 평균경사도는 청원군 20도 미만, 청주시 15도 미만이었다.

임야비율이 말해주듯 옛 청주지역은 개발할 땅 자체가 없어 대전처럼 경사도를 11도 미만으로 강화해도 아무런 탈이 없으나 옛 청원군 지역은 다르다.

가뜩이나 읍·면지역에선 행정구역 통합으로 소외당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여기다 개발행위까지 제한하겠다니 토지 소유자 사이에서 평생 농사만 져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행정구역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으면 재산권 침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도 들린다.

도내에서 임야비율이 가장 낮은 증평군도 평균경사도를 25도 미만으로 유지하고, 청주와 별반 차이 없는 음성군(임야비율 51%) 또한 25도 미만으로 정한 현실에서 15도 미만은 외곽지역 주민 입장에선 섭섭하고, 가혹할 수밖에 없다.

시의회 과반 의원들은 이 같은 원성이 이유 있다고 판단해 개발행위 허가기준 강화를 반대한 것이다.

일부에선 다수가 기준 강화를 원하는데 몇몇 의원들이 이를 거부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모두 맞는 얘기는 아니다.

의회는 주민들의 뜻을 대신해 조례 제·개정, 예산 승인 등을 수행하는 대의기관이다. 즉 시민의 의사를 의원들이 대변하는 것이다.

이번 표결에서 전체 의원 39명 중 22명이 이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의원 39명이 85만 청주시민을 대신한다면 반대표를 던진 22명은 47만9천명의 의사를 따랐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시민의 56%다.

결국 시민 다수가 허가기준 강화를 원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번 개정안 실패의 원인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기준을 동시에 강화한 탓으로 분석된다. 평균경사도, 입목축적도, 표고차를 한 가지씩 점진적으로 강화했으면 시민 저항은 줄 수도 있었다.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이 다시 의회 테이블에 오를지는 지켜봐야 한다.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후반기 의회 때 시민 반발을 무릅쓰고 나설 의원들이 있을지가 미지수다.

후반기 초기면 모를까 이 시기를 놓치면 조례 개정은 사실상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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