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는 보상금에 살길 막막… 농가 매몰 거부 '강력 반발'

과수화상병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한 농자재 창고에 모인 충주시 산척면 과수농업인들. /정구철
과수화상병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한 농자재 창고에 모인 충주시 산척면 과수농업인들. /정구철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최근 충주지역을 중심으로 '과수의 구제역'으로 불리는 과수화상병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갑작스레 과수화상병 피해를 입은 과수농업인들은 말 그대로 망연자실이다.

더욱이 지난해와 달라진 과수화상병 손실보상금 지급 기준으로 보상액이 턱없이 낮아져 이들의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다.

본보는 과수화상병이 가장 극심한 충주시 산척면 피해 현장을 찾아가 어려움에 처한 과수농업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편집자 주

"평생 과수농사만 짓고 살아왔는데 70이 다 된 나이에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할 수도 없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말 그대로 막막하기만 합니다"

지난달 28일 오후 과수화상병이 발생해 초비상이 걸린 충주시 산척면의 한 농자재 창고에는 수심 가득한 얼굴을 한 7∼8명의 과수농업인들이 모여 넋두리를 하고 있었다.

충청북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이날까지 충주지역에서 총 57농가가 과수화상병 확진판정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산척면이 42농가로 전체의 4분의 3이나 된다.

그러나 이 지역 과수농업인들은 공식 집계된 것보다 훨씬 많은 과수원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있다.

이들은 "산척면 전체 179 과수농가 가운데 이날까지 절반 정도인 89농가가 과수화상병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추세로 확산이 된다면 아마 산척면에 있는 과수원은 조만간 거의 전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산척면에서는 지난해에도 무려 54농가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해 공들여 키운 과일나무를 땅 속에 매몰했다.

이 지역 과수농업인들은 대부분 60, 70대로 최근 발생한 과수화상병 때문에 수십년씩 천직으로 삼아온 과수농업을 아예 접어야 할 딱한 처지에 놓였다.

과수화상병에 걸릴 경우, 매몰 후 3년이 지나야 다시 과수를 심을 수 있고 여기서 수확을 시작하기까지는 4∼5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최소한 7∼8년은 수입이 전혀 없이 계속 투자만 해야 한다.

과수화상병 피해를 입은 과수농업인들이 대부분 고령인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이 다시 과수농사를 짓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모인 과수농업인들은 대책 마련을 위해 함께 모였지만 애꿎은 담배만 피우고 서로들 얼굴만 쳐다볼 뿐, 어느 누구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농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을 비롯해 여기저기 기관에서 찾아오기는 하지만 얼굴도장만 찍으러 왔지 어느 한 ○도 시원하게 대책을 내놓는 ○들은 없습니다"

한 참석자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관계 당국을 원망했다.

그러자 누구랄 것 없이 쌓여있던 불만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과수화상병 발생 농가에 대한 보상액수가 크게 낮아졌는데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보상액을 정한 건지 이해가 안됩니다. 현장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펜대 굴리는 ○들이 자기들 멋대로 결정한 탁상행정에 불과합니다"

이날 자리는 과수농업인들이 자구책 마련을 위해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관계 당국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농촌진흥청이 마련한 과수화상병 손실보상금 지급 기준은 지난해까지는 밀식재배와 반 밀식재배, 소식재배 등 재배유형별로 단가를 산정해 적용했지만 올해부터는 1천㎡ 당 재배주수 단위로 세분화하고, 사과의 경우 1천㎡ 당 최소 37주, 최대 150주로 정했다.

과수농업인들은 이런 기준 때문에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무려 30% 정도나 보상비가 낮아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불만이 쏟아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여기에 지난해에는 매몰비용을 정액으로 규정했지만 올해는 실비보상으로 바뀌면서 매몰처리비용도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었다.

과수농업인들은 "올해 보상기준대로라면 지난해보다 300평(990㎡) 당 900만 원 정도가 줄어들게 되고 매몰처리비용이 줄어든 것까지 포함하면 1천200만 원 정도가 줄어드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부분의 과수원이 3천평(9천900㎡) 이상 규모는 되기 때문에 과수원 3천 평(9천900㎡)을 경작하는 과수농가는 올해 보상기준으로 하면 지난해에 비해 무려 1억2천만 원이나 줄어들게된다"며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매몰처리 과정과 매몰처리 매뉴얼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과수화상병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한 농자재 창고에 모인 충주시 산척면 과수농업인들. /정구철
과수화상병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한 농자재 창고에 모인 충주시 산척면 과수농업인들. /정구철

지난해의 경우, 과수화상병 의심신고 시 농업기술센터에서 간이진단키트 검사를 통해 양성반응이 나오면 일단 과수농가에 매몰을 준비시키면서 동시에 농업진흥청으로 보내 최종 양성판정을 받으면 즉시 매몰처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의심신고 이후 양성이 나오면 이르면 5∼6일 이내에 매몰작업까지 모두 완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간이진단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오더라도 농업진흥청의 통보가 있기 전까지는 매몰작업을 할 수가 없어 의심신고 시부터 매몰까지 최소 열흘 이상 걸리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필지 내에서 단 한그루 과수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하더라도 필지 내 과수를 모두 매몰처리하도록 했지만 올해는 필지 내 과수 가운데 5% 미만이 발병한 경우에는 과수화상병이 걸린 과수만 선별해 매몰토록 하고 있다.

이같은 관계 당국의 조치에 불만을 가진 산척면 과수농업인들은 급기야 지난달 27일 산척면 이장협의회장인 이수영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과수화상병 보상기준을 지난해와 동일하게 해 줄 것 ▶간이진단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올 경우, 바로 매몰할 수 있도록 할 것 ▶과수화상병 발생 과수에서 반경 100m까지 매몰하도록 개선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매몰작업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이 때문에 산척면에서는 과수화상병이 발병한 전체 농가 가운데 지금까지 단 두 농가만 매몰을 진행했고 나머지 농가는 매몰작업을 거부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매몰이 지연됨에 따라 과수화상병이 인근 지역으로 계속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농촌진흥청은 과수농업인들의 요구에 이날까지 마땅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생존권을 건 과수농업인들의 절박함은 잔뜩 그늘진 그들의 얼굴에서 엿볼 수 있었다.

"50년 이상 과수농사만 짓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허탈하기만 합니다"

혼잣말처럼 내뱉는 70대 과수농업인의 힘없는 한마디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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