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격전지를 가다 - 낙동강 전선 구축시간 확보 '감우재 전투'
충북 격전지를 가다 - 낙동강 전선 구축시간 확보 '감우재 전투'
  • 신동빈 기자
  • 승인 2020.06.02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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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무장 북한군 기세 꺾고 음성서 첫 '승전보'
감우재 전투 격전지인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 감우재전승기념관에는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등이 설치돼 있다. /신동빈
감우재 전투 격전지인 음성군 음성읍 소여리 감우재전승기념관에는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등이 설치돼 있다. /신동빈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조국의 이름으로 태극기 총 끝에 메고 우리는 싸워 이겼다. 무궁화꽃 향기 속에 이곳에 모였다."

한 달 안에 남한을 수복한다는 북한의 계획된 전쟁, 그 기세는 무서웠다. 개전 10여일 만에 경기도 오산과 강원도 울진으로 이어지는 전선을 점령한 북한군은 평택부터 충북 음성·충주·제천으로 이어지는 고갯길까지 단숨에 남하했다. 당시 우리군의 전력은 8개 보병사단 10만여명, 북한군의 절반이다. 전차는 한 대도 없었고 항공기도 10분의1 수준이었다. 북한군을 저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막대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진격하던 북한군에 제동이 걸린 곳은 음성군 감우재다. 이곳에서 국군 제6사단 7연대의 결사항전으로 6·25전쟁은 새 국면을 맞는다. 감우재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을 기다린 7연대는 7월 5일 치열한 백병전 끝에 북한군의 진격을 처음으로 막아낸다. 이후 국군은 무극리 북한군 진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지만, 다음날 장갑차를 앞세운 반격으로 무극리 남쪽에 위치한 백야리 351고지와 부용산 644고지까지 후퇴하게 된다. 이 전투가 결과적으로 북한에 밀려나는 패퇴양상을 보이지만, 당시 우리군은 낙동강 방어작전을 위한 1개월 시간벌기 작전인 일명 '지연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감우재에서의 밀고 밀리는 전투는 매우 의미 있게 해석된다. 북한군이 이곳에서 소비한 시간은 일주일에 달한다.

감우재 전투에 참전했던 한태학씨는 10년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1과 카빈총이 개인화기의 전부였기 때문에 완전무장한 북한군과의 전투는 백병전으로 끌고 가는 것이 승산이 있었다"며 그날의 참상을 증언하기도 했다.

전력손실이 심했던 6사단 7연대를 돕기 위해 1사단 11연대가 증원을 오게 된다. 치열한 공방전으로 유리한 전선을 차지했던 국군은 전열을 재정비, 7월 8일과 9일 감우재 고개 방면을 넘는 북한군을 격퇴하는 성과를 거둔다. 5일간 감우재를 놓고 벌인 전투가 승리로 기록된 이유다. 이후 국군은 전략적 후퇴를 선택, 7월 10일 괴산으로 퇴각해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한다.

동락리 전투와 함께 음성지구전투로 불리는 감우재 전투는 낙동강 방어선 구축의 시간적 여유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군은 이를 토대로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 45일간 북한의 공세를 막아내고 같은 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전선 반격을 통해 압록강 인근 초산까지 진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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