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민인숙 옥산초 교사

"어서와, 초여름 개학은 처음이지?"

우리 학교 정문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배너에 쓰여진 인삿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늦어진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서는 감염병 예방과 안전한 개학을 위해 수차례 계획과 변경을 거듭하며 시물레이션을 하고 수정·보완하느라 여념이 없다. 모두가 처음 경험해보는 일인지라 서로에게 의지하며 어느 때보다 집단지성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 듯 하다.

연기를 거듭하던 개학이 드디어 확정되고 불안한 가운데 학교 문이 열리게 됐다. 무엇보다도 부푼 가슴으로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어린 1학년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발열 체크, 화장실 사용, 급식 시간, 급식 후 교실에서의 생활지도 등 틈만 나면 뒤엉켜 노는 아이들의 거리 확보를 담임 혼자서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아이들을 만난다는 기쁨도 잠시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이건 나의 기우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개학이 좀 더 늦은 고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자진해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원격수업 중인 학급 아이들의 수업을 피드백해주고 간간이 전화로 체크도 하다 보면 목과 어깨가 아프더라고 했던 그 선생님까지 말이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내밀어 근심을 덜어 준 동료들이 1학년 담임들은 얼마나 고맙고 든든할까?

입학식 날 아침. 선배들과 가족들 속에서 치러진 떠들썩한 축하 분위기의 입학식은 아니었으나 선생님들이 직접 풍선 행렬이 돼 환한 인사로 맞이하고, 신발주머니를 열어 편하게 신도록 도와주고, 교실의 자리까지 친절히 안내해 주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입학식은 조촐히 화상으로 진행됐다. 그날 이후 현관에서 복도에서 급식소에서 여전히 동료 교사들의 협업은 계속되고 있다. 돕는 이나 도움을 받는 이나 모두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문득 도덕 시간에 아이들과 나누었던 '헬퍼스 하이'가 생각난다. 미국인 의사 엘런 룩스는 '선행의 치유력'에서 '헐퍼스 하이'를 언급했는데, 남을 돕거나 나눌 때에 정상치의 세 배로 엔돌핀이 증가한다고 했으며, 그로 인한 심리적인 만족감이 며칠 혹은 몇 주까지도 지속된다고 했다. 역지사지를 실천으로 보여준 동료교사들이 이쁘게 보이는 이유일까?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유난을 떤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과 즐겨서 하는 일은 차원이 다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 생각한다면 결코 쉽지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 주차장에서 내 차 앞에 이열주차된 차를 낑낑대며 밀고 있을 때 소리없이 다가와 밀어준 낯선 이웃의 손길 덕분에 기분좋게 출근을 했다. 그 분의 오늘 하루가 나처럼 행복하기를 바라는 짧은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2020년 초여름 학교는 코로나19로 인해 여전히 뒤숭숭하다.

언제까지 마스크를 써야 할지, 순차적 등교로 두 학년만 등교하고 있는 현재 상황도 이러한데, 더 많은 인원이 등교하게 되면 또 어떤 일들이 돌출할지 알 수 없다.

민인숙 옥산초 교사
민인숙 옥산초 교사

그러나 어느 방송에서 본 공익광고처럼 코로나가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우리에겐 이를 이길 힘이 있음을 믿고 싶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지적질이 아니라 인정하는 말과 몸소 보여주는 실천이며,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오늘도 어느 귀퉁이에서든 쉬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작은 선행의 손길들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받는 행복도 좋지만 베풀며 느끼는 잔잔한 희열을 흠뻑 느껴보는 의미있는 2020년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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