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고문

데이비드 허친스의 소설 중 '레밍 딜레마'라는 작품이 있다. 쥐 과의 포유류인 레밍을 소재로 한 우화소설이다. 소설 속 레밍들은 리더를 쫓아 무작정 절벽을 향해 달린다. 여기서 생긴 용어가 '레밍효과'다.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처럼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행동에 의문을 품는 레밍도 있다.

레밍을 감히 특권층인 국회의원과 비유하는 것은 큰 결례이긴 하지만 과거 유신독재시대 공화당을 돌아보면 '레밍효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당론을 따르지 않은 공화당 의원들은 탄압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다. 당시 모 중진 의원은 당론에 항명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콧수염까지 뽑히며 고초를 당했다.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유물일까. 아니다. 지금도 박정희 시대 못지않게 의원들의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정당이 있다. 집권당인 민주당이다. 부패한 인물과 그릇된 정치에 대해 소신과 이견을 밝히려면 정치를 포기하거나 당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표창원·금태섭(민주당) 전의원이다.

표창원 전의원이 얼마 전 정계를 홀연히 떠났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는 계속 해야겠다' 생각했으나 조국 사태 후 생각이 달라졌다"며 "조 전 장관을 지지하고, 논리와 말 빨로 지켜주는 도구가 된 느낌이 드니 '내 역할은 여기까지'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조국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커지는데 '우리 편'이라고 감싸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때 비판의 선봉에 섰던 진보정치인이었다. 그가 정권의 도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정치와 결별한 것은 양심과 원칙이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 사태 때 민주당에서 소신을 밝힌 거의 유일한 의원이 금태섭이다. 그는 진보성향이지만 이념에 매몰 되지 않은 합리적인 정치인이다. 그래서 조국 전 장관을 과감하게 비판했고 공수처법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는 당에 찍혔다.

금태섭이 최근 민주당 윤리심판원으로 부터 '경고'처분을 받았다. 일부 당원들이 '당론을 거부했다'며 신청한 금태섭 제명 청원에 대해 이같이 결정했다. 민주당은 친문 지지층의 압박에 편승해 금태섭을 아예 퇴출시키고 싶을 것이다.

반면 청와대 하명수사로 재판에 계류 중인 황운하, 최강욱 그리고 권력형 비리로 수감생활을 했고 부친인 김대중 전대통령이 남긴 재산을 놓고 형제간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홍걸, 위안부 할머니들을 '앵벌이'로 앞세워 재산을 축척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윤미향 등이 금배지를 달았다.

정치적인 논란과 물의를 일으킨 인물들이지만 당에 대한 충성도는 높을 것이다. 21대 국회에선 초거대야당이 된 민주당의 전열이 더욱 일사불란해 질 것이 뻔하다. 진중권(전 동양대 교수)식으로 말하면 180대의 거수기가 대기하고 있다. 레밍효과다.

민주당은 개헌 빼곤 못할게 없는 초거대여당이지만 오만과 독선에 빠진다면 민심은 언제든 등을 돌린다. MB정부시절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범보수진영은 185석을 얻어 기세등등했지만 정권의 독주에 민심이 폭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레임덕에 시달렸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독주하고 있다. 야당과의 협치를 외면하고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독식하려 하고 있다. 또 당내 다양한 의견도 묵살하고 있다. 윤미향 의혹에도 함구령을 내렸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젊어서는 일본에게 치욕을 당하고 노후엔 윤미향에게 이용당했다. 그런데도 이해찬 대표는 윤미향을 편들며 "윤미향 의혹에 개별입장을 내지 말라"고 쇄기를 박았다. 정의연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하기위해선 썩은 살과 피를 도려내는 것이 순서지만 조국처럼 우리편이라면 암세포가 퍼져나가든 말든 무조건 편들고 소신발언 하는 의원들은 찍어내려 하고 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고문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면 당연히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헌법 제46조). 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토론도 없이 무조건 당론에 따르라고 한다. 레밍 무리와 뭐가 다른가. 권력욕에 눈멀고 가슴에 철판을 깔지 않았다면 이런 정치판에 혼란과 염증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정치인들이 있게 마련이다. 민주당이 박정희 시대의 공화당처럼 퇴행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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