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절집인가, 꽃집인가/ 수천수만 중생이 성불하여/ 오롯이 꽃으로 피어났는가./ 부처님의 향기 그윽하다.//

밀짚모자 눌러쓴 여스님의 호미 끝에서/ 달각달각 염불소리가 흙을 깨운다./ 고무신 발소리에도 신심이 여무나 보다/ 벙싯벙싯 꽃잎 여는 소리, 부처님 말씀이다.//

보탑사 경내에 발들인 뭇 생명체는/ 앞뜰 뒤뜰 도랑가 그 어디라도

앉은 그 자리에서 꽃이 된다.//

한결같은 절개 유난히 버거운 날/ 노란 먼지꽃 송화를 토하던 소나무도/

보시시 진분홍 연등화를 피운다./ 부처님오신 날의 화려한 성불이다.//

꽃이 별처럼 내린 절집 마당 서성이면/ 미물 같은 이 몸도 꽃물 들려나/ 뒤란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꽃술에 코 박고 흠흠, 향기를 마신다.//


연꽃골 옛 절터에 솟아 있는 3층 목탑, 진천보탑사는 어여쁜 여승의 도량이다. 꽃들의 천국이다. 수천만 중생의 불심이 꽃으로 피어 그윽하다. 목탁소리로 신심이 여문 수천의 꽃이 바로 중생이다. 여스님이 호미 들고 밤낮없이 꽃을 가꾸는 건, 중생구제의 또 다른 수행인지 모른다. 그니의 땀방울이 하늘하늘 꽃잎으로 피어난다. 꽃을 보고 위안을 받는 건 그 때문이리라. 몸과 마음에 평화가 들앉는다.

보배탑 세워 모든 사람의 가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심는다. 자비심으로 가득 차 행복해지길 염원하는 보탑사! 그는 통일의 더 큰 염원을 품고 세상에 출연한 통일대탑이다.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의 황룡사 9층탑의 맥을 잇는 유일한 목탑이다. 나무로 되어 있는 몸체가 바로 숨 쉬는 자연이다. 자연은 생명체를 보듬어 키우는 본질이다.

1992년 5월 불사를 시작하여 1996년 6월에 완공되었다. 짱짱하고 어엿한 3층 목탑으로 우뚝 섰다. 사방 둥글둥글 온화한 산세가 연꽃의 형상으로 절을 품어 안았다. 절이 들어선 그 자리는 애초에 연못이었다. 보탑사는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법력, 필연에 이끌린 도량이다. 나무가 아플세라 쇠못을 쓰지 않았다. 후손이 어려울까 지붕에 흙 한 덩이 올리지 않았다. 특이한 공법이다. 전승되어오는 장인의 정신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리라.

3층 목탑은 108척, 42.71미터이다. 백팔번뇌를 의미한단다. 아파트 14층 높이로 실내에서 3층까지 오를 수 있는 형태이다. 사방으로 각층마다 다 다른 이름의 현판이 걸려 있다. 남쪽 정면에 서면 1층 대웅보전, 2층 법보전, 3층은 미륵보전이다.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극락보전, 수다라전, 대자보전이 보이고, 뒤쪽으로 돌아 북쪽 방향에 이르니 적광보전, 보장전, 도솔타전 현판이 반듯하다. 다시 동쪽방향으로 돌아본다. 약사보전, 삼장전, 용화보전이다.

경내 출입은 서문을 통한다. 입구 왼쪽엔 큼지막한 자연바위가 돌단풍을 안아 키우며 눈인사로 맞는다. 이 바윗돌은 절이 세워지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니 터줏대감인 셈이다. 하고 많은 땅 다 놔두고 대감님 어깨위에 턱 걸터앉아 뿌리를 내리고 곰실곰실 잎을 넓히는 작은 생명체가 앙증하고 경이롭다. 부처님의 도량 안에서는 어디서고 마음 편히 숨을 쉴 수 있다는 걸 아는 게다. 돌 위에서 자라는 생명체도 이리 평안하고 생기로운데, 앞 뒤뜰에서 포실한 흙을 딛고 자라는 꽃들은 오죽할까. 스님의 손길, 눈길로 자란 덕인지 꽃나무에서조차 법력이 흐르는 듯하다. 스님을 닮아가는 게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사람들에게 평화로움을 주겠는가.

1층 금당을 들어서면 심주를 중심으로 사방불이 모셔져 있다. 동방에는 약사불을 모시고 앞엔 초파일부터 진상된 수박이 동지 때까지 즐비하다. 그 수박을 먹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을 낳고 있어 동짓날 수박 한 조각 먹기 위해 먼 길 마다 않고 찾는 이도 헤아릴 수 없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에서 구제를 하신다니 수박의 상함도 막아주기 때문인가 보다. 약사불의 법력이 서린 수박이 어찌 예사롭겠는가.

서방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대세지, 관세음보살이, 남방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로 지장과 미륵보살이 있다. 북방에는 비로자나불과 보현, 문수보살이 함께 모셔져 있다. 사방불 뒤로 아름드리 금당 심주가 굳건하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심주에는 999개의 작은 백자탑이 '무구정광대다라니' 사경과 함께 불자의 발원을 담고 있다. 남, 서, 북, 동으로 돌며 3배씩 올리고 나면 마음가짐이 경건해진다.

2층으로 오른다. 나무 계단이 따뜻하고 인정스럽게 몸을 내준다. 법보전이다. 팔만대장경을 번역해 넣은 윤장대를 중심으로 법화경을 새긴 석경이 전시되어 있다. 안내를 해 주신 불자께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왼쪽으로 3번을 돈다. 경전을 읽는 의미와 같이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단다. 얼결에 따라 돌았다. 세워진 지 처음 얼마간은 윤장대를 직접 손으로 돌렸었는데 요즈음은 사람이 윤장대를 돈다.

2층과 3층 사이 암층에는 각종 탑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각 나라마다, 시대마다 조금씩 형태가 다름을 볼 수 있다. 3층은 미래불인 미륵부처님 세 분을 모신 곳이다.

2, 3층 난간을 돌며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탑돌이 하듯 한 바퀴 돌아보면 서있는 위치에 따라 산세의 느낌이 다르다. 연꽃 형상에 꽃술로 들어앉은 탑사의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부처님이 연꽃 대좌에 앉은 형국이다. 이곳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나 역시 한 송이 연꽃인양 착각이 든다. 세속에 오염된 중생도 품는 자비심이 스며든 때문이리라. 요즈음은 난간 개방은 하지 않고 문만 활짝 열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영훈 목수에 의하면 '보탑사를 세우려는 까닭은 하늘의 문을 열고 역사의 맥을 잇고 사람들이 사람답게 더불어 사는 통일 염원을 실현하려는 것이다'라 했다. 탑은 하늘을 우러러 사람들이 쌓아 올리는 정성이라 한다.

탑사가 다시 보인다. 하나하나 의미를 지니지 아니한 것이 없다. 탑 꼭대기 아득한 상륜부를 바라본다. 33척, 9.99미터 전체가 구리판으로 되어 있는 상륜부는 도금하였고, 피뢰침 부분은 백금이다. 고정시키기 위해 쇠줄을 늘이고, 동자상이 그 줄을 잡고 있다. 상륜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조각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지붕 끝부분 질서정연한 백자 연봉 역시 기와와 어울려 예술미가 돋보인다.

뒤쪽 한편에서 돌돌돌 맑은 물소리가 들린다. 불유각이다. 지하 200미터에서 끌어올린 청정 지하수, 우유와 같은 감로수다. 부처님 전에 올리는 감로수 한 바가지 떠서 목을 축인다. 청량함이 짜르르 오장을 타고 흐른다. 마음과 눈이 한결 밝아진다.

불유각 뒤로 이어진 뜨락엔 '삼층석탑'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무명 치마저고리에 쪽진 옛 여인처럼 음전해 보인다. 고려시대부터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연곡리 백비'와 함께 이 절터를 지켜온 노할머니다.

진천 보탑사에서는 소나무도 진분홍 연꽃을 피운다. 지조와 절개를 숙명으로 알고 사철 초록 잎으로 충절을 지켜가는 모습이 부처님 눈에 안쓰러워 보였을까?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아니면 대견하여 스님으로 하여금 중생의 발원을 담은 연등을 꽃 인양 달아주게 했을까. 소나무에 핀 연꽃에서는 솔향이 난다. 중생의 염원이 이루어지도록 함께 기도하는 소나무의 꽃등이 붉게 피어오른다. 아름다운 성불이다.

두 손을 모으고 허리 굽혀 예를 드리고 돌아 나오려니 범종각과 법고각이 좌우로 길을 비켜 소리 없는 울림을 준다. 연꽃골의 그윽함이 가슴으로 들어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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