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찰 문화재 방재시설 탐방

지난 봄에 발생한 양양 낙산사 화재사건은 문화재 방재대책이 절실함을 다시한번 일깨워줬다. 정부와 불교계에서는 한때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된 바 있다. 불교계 인사 등과 함께 일본 와카야마 현에 있는 진언종의 총본산인 고야산 일대를 방문, 일본 당국과 사찰의 문화재 방재대책 및 시설을 살펴봄으로써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했다./ 편집자

▶문화재 보호정책과 방재시설

식목일인 지난 4월 5일, 강원 양양 일대 산불에 유서 깊은 고찰 낙산사(洛山寺)가 잿더미로 변했다. 이 와중에 이곳에 보장(寶藏)된 보물 제479호 동종(銅鐘)은 완전히 녹아 없어졌다.

그러자 관련 기관별로, 또는 관계기관 합동회의라는 형식을 빌려 대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그 때뿐이었다.

낙산사 화재만 해도 불과 넉 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이미 아득한 과거가 돼버린듯한 느낌이다. 그 많던 대책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대로 뒀다가는 해인사 팔만대장경판도 위험하며, 법주사 팔상전도 소실 가능성에 늘 노출돼 있으며, 화엄사 각황전도 지금으로서는 화재에서 지켜낼 수가 없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문화부(부장 탁연스님) 주도로 '일본문화재방재시설시찰'을 기획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비록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었으나,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1-2시간거리에 있는 와카야마현(和歌山縣) 나카군(那賀郡) 후모산(風猛山) 소재 고카이테라(粉河寺)를 거쳐 같은 현 사찰 52곳이 밀집한 일본 진언종(眞言宗) 본산격인 고야산(高野山) 일대를 탐방했다.

현지 안내와 방재시설 소개는 이들 사찰 지역 소방시설 전문 설비업체로서 오사카에 본부를 둔 ㈜아즈사설계컨설턴트 대표이사인 하다케야마 슈지(64) 씨가 맡았다.

그에 의하면 국가가 지정하는 문화재들인 국보(國寶)나 중요문화재에 대한 방재시설 설치는 일본 문화재보호법이 규정하는 정책과 이에 의한 보조금 교부제도에 의해 시행된다.

국가지정 문화재에 대한 사업비는 국고보조금으로 충당된다. 전체 사업비 중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게는 50%, 많게는 80%에 이른다.

2005년 현재 일본은 약 2천600건에 달하는 문화재가 국보로 지정돼 있으며, 이를 포함한 국가지정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연간 2천억원(한화) 가량의 예산이 책정되고 있다는 것이다.국고 보조금 지원 사업대상은 설계도와 관련 예산서 등을 첨부한 신청서를 관계당국에 제출해 그 심사에서 합격된 경우에만 한정된다.

건조물 문화재 방재시설로는 경보설비(자동화재보고 설시)와 소화 설비, 피뢰침설비로 나뉘어진다. 이 중 화재 발생 사실 혹은 그 가능성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경보설비는 소방법에 의해 설치가 강제화해 있다. 다른 설비는 강제되지 않는다.

▶물 대포가 수호 고카와사 본당

소방법과 문화유산 현장의 괴리를 감쇄하기 위해 고안된 방재시설 실례로 하다케야마 사장은 열 감지기를 소개하며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현장에서 시연해 보였다. 열 감지기란 열기를 감지해 미리 경보를 통해 알려주는 기기.

그 실험 장소는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고카와사 본당(本堂. 일종의 대웅전)이 선택됐다. 남쪽을 바라 보는 이 목조 기와건축물은 두 개 건물을 마치 2층처럼 포갠 형식인데 전면 33m, 뒷면 25m에 높이는 33m에 이르고 있다. 사찰 기록에 의하면 정덕(正德) 3년(1713)에 중건한 건물이라 한다.

열 감지기는 건물 외부에서 발생하는 화재에는 대처가 곤란한 법. 하지만 ㈜아즈사설계컨설턴트에서는 빛 센서를 이용해 옥내와 옥외를 막론하고 약 0.3㎡의 불꽃을 감지할 수 있는 열 감지기를 개발해 이 고카와사 본당에 적용하고 있었다. 다른조명에 감지기가 오작동되지 않도록 적외선과 자외선의 두 가지 파장의 흔들림을 동시에 검출해 작동하도록 설계했다는 것이다.

고카와사 본당 외곽 주변에서 시행된 실험 결과 작은 불꽃에도 건물에 장치된 화재경보음이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열 감지기를 포함한 소화설비는 화재발생 10분 안에 소방차가 도착해 본격 화재진압이 시작되기 전까지 발생 초기 약 5분 동안 초기 방재를 할 수 있는 설비 일체를 말한다. ㈜아즈사설계컨설턴트는 소화제로 맑은 물을 사용한 냉각 소화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충분한 물과 그 저장을 위한 물 탱크 시설이 확보돼야 하며, 이에 더해 그러한 물을 충분한 압력을 가해 적재적소에 쏟아 부어야 한다. 맑은물을 사용하는 까닭은 문화재에 대한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 업체는 우리의 과거 시위현장 진압 작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물 대포인 '방수 총'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물 대포가 바로 시설을 쏘아버린다면 막대한 손상을 낼 수 있으므로, 방수 총은 방수 대상 건물에서 일정 거리에 떨어져 설치된다. 사정 거리는 25m가 되며,1기당 방수용량은 0.7파스칼 압력으로 분당 500∼600ℓ를 쏟아내게 된다.

건물 주위를 돌아가며 배치된 방수 총은 화재가 난 건물을 향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에워싸며 물을 쏘아댄다. 고카와사 본당이 바로 이런 식이었다.

이 사찰에는 본당 외에 그 인근 천수당(千手堂)과 본당 대문인 중문(中文), 그리고 사찰 영역 전체의 통로인 대문(大門)에도 방재시설이 설치돼 있다.

다른 곳이 대체로 두 개씩인 데 비해 본당에는 건물 주위를 돌아가며 물 대포모두 여섯 개가 설치돼 있었다. 그 효능을 증명하기 위해 탐방단을 위해 ㈜아즈사설계컨설턴트는 건물 전면 좌우에 배치된 두 개의 물 대포를 동시에 가동했다.

노즐에서 뿜어나온 물 줄기를 20m 이상을 하늘로 치솟아 마치 아치형 대문을 만들듯 하는 광경을 연출하면서 본당 지붕으로 떨어졌다. 치솟는 물길에 무지개가 형성됐다. 1분이 채 안 돼 본당 처마 끝에는 굵은 물줄기가 뚝뚝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에 소비되는 물은 어디에서 어떻게 조달할까?

고카와사는 평지에 150t 용량인 지하탱크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사찰 경내에 설치된 모든 물 대포를 가동해도 30분 정도 유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 가동은 위한 엔진은 독일제 디젤 엔진이라고 했다. 정전을 대비해 기동용 축전지(밧데리)를 별도로 구비하고 있다도 했다.

고카와사 일대에 설치된 이런 방재시설은 2001∼2003에 걸쳐 계획이 수립되고 공가가 끝났다고 한다.

▶국보 지붕에 장착된 소방시설

와카야마현 고야산(高野山)은 산 전체가 불교 성지라 할 만한 곳. 이에 어울리게 해발 800m 지점 일대에 자리잡은 분지를 중심으로 약 4㎞에 걸쳐 사찰 52곳에 400여 채 건물이 밀집해 있다.

200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곳에는 일본 국보 21건, 중요문화재 137건, 지방문화재 13건이 포진해 있으며, 이 중 건축물은 국보가 2건, 중요문화재가 18건이라고 재단법인 고야산문화재보존회 미쓰보시 히로요시(三星寬嚴) 씨가 전했다.

먼저 들른 고카와사란 곳은 단일 사찰이고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데 반해 고야산은 방재대상 지역이 워낙 넓은 데다 건물이 밀집해 있으므로 개개 건축물이 아니라 전체 지역에 대한 소방계획이 수립돼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 일대에 설치된 소방 파이프는 총길이가 8㎞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소요되는 물은 이보다 약 200m를 더 올라간 해발 1000m 지점에 설치된 탱크에서 공급된다. 따라서 자연낙차와 그에 따른 수압에 의해 방재용 물을 공급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평지에서 물을 뿜어 올리는 고카와사와는 확연히 다른 대목이다.

탱크가 수용하는 물 900t을 현재 설치된 소화기로 한꺼번에 방수한다면 5분을견딜 수 있다. 그 5분 사이에 소방차가 도착한다고 한다.

고야산 구역 중 단상가람(壇上伽藍)에 자리한 부동당(不動堂)이라는 고색 창연한 건물과 어영당(御影堂)이라는 또 다른 고식 목조건물에 대해서는 소방 방재시설시연이 있었다.

시설 설비업체인 ㈜아즈사설계컨설턴트와 이곳을 관리하는 총본산(總本山) 금강봉사(金剛峯寺) 산하 박물관인 고야산영보관(高野山靈寶館)은 먼저 1899년에 이미일본 국보로 지정된 가마쿠라시대 고건축물인 부동당으로 탐방단을 안내했다.

고카와사 본당과 마찬가지로 부동당 주변에는 모두 5개에 이르는 물 대포가 설치돼 있었다. 방재용 스위치를 틀자마자 부동당은 온통 하얀 물 연기를 뿜어냈다. 자세히 살펴보니 용마루 양쪽 끝에 몇 개나 되는 수도꼭지 같은 시설이 있어 연방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붕 전체에 걸쳐 10여 개는 족히 될 만한 수도꼭지가 일시에 뿜어내면서 연출한 광경은 일대 장관을 방불했다.이런 시설은 40년 전인 1965년에 설치됐다가 10년 전에 개수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장관은 부동산 인근 평지에 자리한 어영당에서 연출됐다. 회(檜)나무껍질로 지붕을 마감한 이 목조건물은 평면 형태가 5칸 4면의 정사각형으로 단상가람구역에서는 부동당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평가된다.

이 어영당 방재시스템은 고카와사 본당과 흡사하게 건물 주변에 물 대포를 설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만은 완연한 '상향식 스프링클러'를 방불했다. 사각 건물주변 바깥을 돌아가며 촘촘히 설치된 노즐을 틀어대니 폭포수가 분출하는 듯한 광경을 연출했다.

이 희대의 광경에 놀란 주변 관람객들은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다가 이내 그장면을 담기 위해 연방 사진기 셔터를 눌러댔다.

열대 밀림을 방불하는 오쿠노인에는 고카와사와 비슷하게 대형 물탱크를 마련해놓고, 현장마다 물대포를 설치해 놓았다. 일체경장(一切經藏)이라 해서 고려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곳에도 물 대포는 어김없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대비책이 마련되고 있음에도 화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고야산영보관 부관장 이즈쓰 신류(井筒信隆) 씨 전언에 의하면 최근 5년 동안에 모두 3건의 화재가 발생했는데, 모두 방화였다는 것이다.

문화유산의 가장 무서운 적은 역시 인간임을 이곳 일본에서 새삼스레 확인할 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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