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별빛이 반짝이는 밤. 마당의 잔디를 밟으며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나누는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진다.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면 생각지 않은 일로 경찰서를 다녀오기도 한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남편은 오토바이 절도사건 학생의 장래를 위해 부모님을 대신 해 " 한 번만 용서 해 주시면 책임지고 잘 선도하겠다."는 각서를 썼다. 자식을 키우는 같은 마음인 주인의 선처로 늦은 밤 제자를 집으로 데려 올 수 있었다.

어느 해 화창한 봄 날 나른한 쉼을 즐기고 있을 때 손님이 찾아왔다. 어여쁜 아가씨와 함께 온 청년은 반듯하고 인상 좋은 훈남이었다. " 사춘기시절 새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방황하고 힘들어 할 때 저를 붙들어주신 선생님 은혜를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오토바이 사건 주인공인 그가 해양경찰이 되어 조국과 겨레와 바다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선생님 주례로 결혼하고 싶으니 허락 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썼다 지웠다 주례사를 준비하는 남편의 모습은 마치 숙제를 못해 쩔쩔매는 영락없는 학생이었다. 그와 함께 젊은 날 우리가 살던 집에도 가보고, 오랜 친구도 만나러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짧은 여행길을 나섰다.

단위농협결혼식장은 그야말로 시끄러운 시골장터 같았다. 사회자는 " 오늘 주례선생남은 우리들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으로 신랑 신부에게 각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이십니다." 늠름하게 걸어가는 신랑의 어깨가 믿음직스러웠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오월의 신부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조금은 긴장한 듯 아니 어쩌면 남편은 신랑 신부보다 더 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객들과 가족들 앞에서 서로 존경의 예를 갖추는 맞절순서가 되었다.

"신랑은 15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신부는 45도로 인사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 맞절! 신랑과 신부는 잠시 그 모양 그대로 자세를 유지해 주십시오. 여러분! 두 사람의 맞절을 통해 만들어진 사람 인(人)자가 보이십니까?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비로소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의 시작을 축복하고 축하하는 격려의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식장을 가득 채웠다. 갑자기 시끌벅적하던 예식장 분위기가 조용해지며 주례사를 경청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신랑 각시 맞절의 의미가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기대며 힘이 되어주는 온전한 한사람(人)이 되는 깊은 뜻이 들어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스승으로, 인생 선배로 오늘 하나 되는 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은 결혼 생활의 지혜를 물에게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가장 슬기로운 결혼생활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입니다. 물이 흘러가다 거친 돌이나 큰 바위를 만나면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고. 돌아가는 지혜로움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가다가 또 깊은 웅덩이를 만나면 그 곳에 물을 다 채운 후 바다에 이르는 인내를 배워야합니다. 살면서 어려운 난관을 만나면 순리대로 채워가는 여유와 온전한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그날 남편의 주례는 어떠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았지만 듣는 이의 심금을 올리기에 충분했다. 둘이 하나 되어 사람(人)이 되는 그들을 축복하며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따듯했다.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행복하고 지혜롭게 잘 살고 있다는 제자의 소식을 듣는다. 올 여름 휴가는 그렇게 오라는 데도 한번 가보지 못한 그 바다로 한 사람(人)을 만나러 가 봐야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