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먼동이 트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나의 궛 전을 노크하는 참새들의 지저귐이 새벽을 연다. 주섬주섬 작업복을 입고 텃밭으로 출근을 했다. 새벽이슬에 목욕을 한 상추 가지 토마토 고추와 파들이 반겨주는 농장은 언제나 내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 준다. 꾀꼬리가 청아한 목청으로 인사를 했다. 참나무 숲속 어딘가에 앉아있는 꾀꼬리를 찾는다.

매일 같이 듣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내 영혼을 헹구워 주는 소리다. 테크노 단지가 형성되면서 주변의 크고 작은 야산이 사라져 버렸다. 소나무와 참나무 아카시나무가 울창한 뒷동산이 있는 문암 마을은 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숲속이 되어버린 우리 집은 노란색을 띤 카나리아, 회색빛의 콩새, 뻐꾸기와 곤질박이, 산비둘기와 까치 이름도 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뻐꾸기 소리와 목탁소리를 내는 회색빛의 새가 우는가 하면 현란한 목소리로 울어대는 검은등 뻐꾸기의 네 박자 노래는 언제 들어도 신비스러운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요즈음은 헛깨나무에 꽃망울이 생기고부터 어디서 날아오는지 꿀벌들의 '윙윙' 역사하는 소리가 활기차다. 아카시나무보다 더 많은 꿀을 함유하고 있는지 집을 에워싸고 있는 헛깨나무 덕분에 양봉원을 방불케 하고 있다. 자연의 오묘함이란 보고 또 봐도 새롭다.

취미로 청계 닭을 기르기 시작한지 1년이 되었다. 암 닭 3마리가 21일 동안 알을 품더니 29마리의 병아리를 쳤다. 어미 품속에서 긴 잠을 자던 알이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고개를 내밀고 '삐약'거리는 장면에 난 신바람이 났다. 한옥 집 안 쓰는 외양간과 창고에 병아리 집을 만들어 기르는 데 한 마리는 2달이 되니 약 병아리가 되었고 오골계 병아리는 한 달이 되었으나 병아리 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 희귀 동물들을 반려자라고 기른다는데 졸지에 선물로 받은 청계 닭이 사랑스런 내 가족이 될 줄이야.

매일 같이 먹이주고 물주며 틈틈이 풀 뜯어다 간식 주는 재미로 세월을 엮는다. 그놈들의 배설물로 호박과 오이 토마토, 가지를 기르니 열매가 주렁주렁 풍성하다. 일석이조의 행운을 잡았다.

코로나 19로 1인1책 펴내기 강사며, 대한 노인회, 문학 활동, 농업기술센터의 생활개선 회원으로 동분서주 하던 일들도 쉬고 있는 상태다 보니 한가하기 짝이 없다

젊은 날 허둥대며 아내와 어미 사업가로 시간에 쫓기며 살던 내 인생이 이처럼 유유자적 한가한 시간이 올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앞마당 호두나무에 마치 소녀가슴에 젖 몽울만한 열매를 바라보다보면 하루해가 저문다.

텃밭에 의자를 같다 놓고 풀과의 전쟁을 시작 한다. 상추와 쑥갓, 잎채소를 한바구니 뜯고 가지와 호박 오이를 따다 뜰에 갖다 놓았다. 이것은 내손으로 가꾸어 얻은 식재료들이다. 산속에 자연인처럼 뚝딱뚝딱 요리를 해서 저녁 반찬을 만들 것이다.

황혼기에 부부는 신혼생활을 즐긴다. 처음 시집을 왔을 땐 12식구 층층시하 대가족으로 살았다. 이제 아이들 짝 찾아 둥지로 떠나보내고 둘만 남았다. 남편 방, 거실은 도서관이 되었고 비좁기만 했던 집이 넓기만 하다. 부엌에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앉아 있다 보면 음정 박자 틀리지 않는 개구리들의 고향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뒷동산에서 구슬프게 울어 대는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나를 부른다.

떡 해 먹자 "부엉" 간간이 들려오는 부엉이도 울고 우두커니 길목을 지키는 가로등은 우뚝우뚝 선 아파트를 바라보며 졸고 있다. 집집마다 집 지킴이로 키우던 삽살개도 사라진지 오래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고요가 깃든 문암 마을에 기적을 울리며 밤기차가 철커덕 거리며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새벽부터 움직인 탓으로 난 초 저녁잠이 많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뜰아래 심겨진 허브와 달맞이 꽃향이 잠자리를 파고 들었다. 한숨 곤하게 자고 나면 오전 2시 축시다. 이 시간에는 축축 늘어져 잠을 자야 한다는데 지금부터 책보고 글쓰고 새벽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난 행복한 여인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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