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자신도 모르게 어떤 노래를 듣고 그 노래에 꽂히면 하루 종일 흥얼거려지는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나에게 오늘이 그런 날이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집안일을 하면서 틀어놓은 음악 중에서 노고지리가 부른 '찻잔'이라는 노래가 연신 흥얼거려졌다. 특히 전주 멜로디가 매력적인 이 노래는 시작하면서부터 무의식의 나를 이끌고 커피 향이 가득했던 '목련다방'으로 데려가 주었다.

'목련다방' 그곳에는 20대의 풋풋한 나의 젊음과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친구들이 있었다.

건물 이층에 자리 잡고 있던 그곳은 최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 하고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외래어 간판을 달고 DJ가 신청곡을 받아 음악을 틀어주는 새로운 커피숍이 생겨날 때도 그 삐걱거리던 나무계단의 이층에서는 커피잔 옆에 에이스 과자를 가지런히 담아내던 곳이었다. 늘 우리 또래의 손님들이 북적이고 간간히 신청곡을 틀어주기도 했던 그곳은 퇴근 후 친구들과 만나는 편안한 아지트였다.

'목련다방'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친구들이 명자, 명옥. 연복이다. 뾰족구두를 신은 세련된 단발머리의 명자와 커트머리가 잘 어울리던 연복이의 큰 눈망울. 그리고 언제나 예쁘게 잘 웃어주던 명옥이와의 수다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사람의 오감 중에서 가장 먼저 열리고 또 가장 늦게 닫히는 것이 바로 청각이라고 한다.

무의식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인간의 귀는 뇌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귀를 통해 들어온 소리들은 뇌에서 분류되고 인식되어 기억에 저장되고 마음을 이루는 소중한 재료가 된다.

우리는 좋아하는 노래를 감상하며 기분 전환도 하고, 꿈을 꾸고, 때로는 위안을 받기도 하는데 그만큼 노래에는 마음을 움직여 주는 큰 힘이 있기 때문인가 보다.

기억 속에 저장된 한 곡의 노래가 소중한 추억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 나만의 낙원으로 이끄는 시간. 그 시절의 '목련다방'에서 헤어나지 못할 무렵 무언가 통하였는지 서울 사는 연복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양반은 못 된다는 나의 말에 대뜸 어떤 색깔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글쎄… 이제 늙어가는 건지 딱히 좋아하는 색깔이 떠오르지 않네. 요즘은 단지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선호하는 색깔이 달라지는 것 같아. 왜 심리테스트하려고?"

대답을 하면서도 생각이 빨리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긴 했었나 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선호하는 색이 그릇에 따라, 옷에 따라, 인테리어에 따라 다른 것은 이제는 뭐든지 편안하게 어울리는 것이 좋다는 나의 대답에 "시간이 나서 친구 가방 하나 손뜨개해 주려고 물어봤어. 커피색 어떠니?"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하고 구구절절 헤매는 내가 딱해 보였는지 서프라이즈로 준비하려던 계획을 털어놓고 말았다.

살짝 김 빠진 기분이 드는 친구에게 어느 옷이건 잘 어울리는 색이라며 탁월한 선택에 고맙다는 감동을 전한 후, 친구의 기억에 남아있는 커피 향을 따라 다시 '목련다방'의 그 삐걱대는 계단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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