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1집
들국화 1집

엘리베이터의 원형을 찾아가자면 기원전 200년경 아르키메데스가 고안했다는 밧줄과 도르레를 이용한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지만 이러한 형태의 것들은 밧줄이 자주 끊어지는데다 특별한 안전장치가 없어서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엘리베이터에 안전장치를 추가한 현대의 엘리베이터를 만든 회사가 바로 오티스였는데, 지금은 100층이 넘는 건물 꼭대기층까지도 불과 몇 분이면 안전하게 오르는것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됐지만 초창기의 엘리베이터 기술로는 '빠르고 안전하게'라는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따라서 늘 속도가 문제였는데 고민 끝에 오티스사는 세계 최초로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엘리베이터의 운행 속도가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이용객들의 불만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는데, 탑승객들은 현재 몇 층을 지나가고 있는지를 보며 조급해하는 대신에 거울을 보며 용모를 단정하게 한다든지하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벽에 거울을 달았다고 해서 좁은 공간에 갇혀있는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거울을 보는 동안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게되면 만나게 될 사람을 생각한다든지 하며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잠시 잊었던 것입니다.

살아가다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현재의 상황이 금방 개선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오티스의 거울처럼 현실을 잊고 꿈을 꾸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예술이고 또 음악이 아닐까요?

생각해보면 10대 때 저의 모습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단층 기와집 좁은 방안, 냉방도 되지 않아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며 더위를 식히던 시절.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들국화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누워 있었는데, 나의 시선은 단정하게 묶여진 커튼 사이의 작은 창문너머에 닿아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푸른 하늘이 있었고 군데 군데 흰 구름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렇게 음악은 삶의 무게와 아픔 그리고 현실을 잊게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85년 발매돼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들국화 1집도 그런 음악이었습니다.

힘들고 초라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로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괜찮아, 나도 그래" 라고 말하며 위로와 용기를 주던 그 노래들.

우리의 미래가 항상 밝을수는 없겠지만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함께 노래를 부르겠다던 사자의 울부짖음 같던 그들의 포효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무 걱정없었던 때가 언제 있었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요즈음 코로나19로부터 파생된 여러가지 문제들로 삶의 현장 곳곳에서 힘든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세계로 가는 기차', '더이상 내게', '축복합니다', '사랑일 뿐이야', '매일 그대와', '오후만 있던 일요일',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이렇게 들국화 1집에 담겨 있는 9곡의 노래가 지금으로부터 35년이나 전에 발표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이유는 오티스의 거울처럼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전 새로 장만한 CD플레이어에 넣어둔 들국화 1집에서 지금은 '축복합니다' 라는 노래가 재생되고 있는데 스피커에서는 멤버들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앞길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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