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람] 김정호 청주랜드 진료사육팀장

동물원에는 매점이 하나 있다. 매점 사장님은 물범들의 하루를 어쩌면 제일 잘 아시는 분이다. 물범들이 사는 곳은 매점에서 불과 몇미터 남짓 떨어져 있고, 평일 관람객이 뜸한 시간이면 물범의 일과를 관찰하는 것은 사장님의 큰 낙이었다. 물론 물범을 관리하는 사육사분이 계시지만 낚시찌처럼 물밖에 머리만 내놓고 까만 눈동자로 응시하는 새끼 물범 '반짝이'는 사장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관찰하는 절대시간이 많은 사장님에게 '반짝이'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반짝이'는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반짝이'를 닮은 매점의 물범인형도 많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반짝이'가 눈을 잘 뜨지 못했다. 원인을 파악해보니 날이 더워지면서 물범들이 살고 있는 풀장의 수질이 나빠진 것이 이유였다. 물범은 특성상 분변을 물속에서 보는데 4마리가 같이 살다보니 비좁은 수조의 물은 아무리 자주 갈아줘도 금방 더러워졌다.

더욱이 몇 해 전부터 지하수가 잘 나오지 않자 수돗물로 대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갈수기에는 일년 수돗물값만 몇백만원에 달했다. 그러는 사이 훌쩍 커버린 '반짝이'의 인기는 예전에 비해 시들해져 갔다. '반짝이'의 눈 치료를 위해 자극이 되는 햇볕을 가리는 그늘막을 쳐주고 메인풀장 옆 수조에 '반짝이'를 격리시켰다. 한달 동안 세가지나 되는 안약을 매일 넣기위해 '반짝이'와 사육사들은 잦은 실강이를 했다. 물범 사육사들의 인내로 '반짝이'의 눈은 호전을 보였다.

'반짝이'를 포함한 물범들의 영명은 하버씰(harbor seal)이다. 지구 북반구 바다에 폭넓게 살고 있는 물범종이다. 하버씰은 해양포유류답게 바다의 깊은 곳을 누비며 빠른 물고기를 더 빠른 수영으로 잡아먹는다. 20~30분 동안 바닷속 잠수는 거뜬하다. 한참을 물속에서 있기 위해 심장박동수는 느려지며 혈액중의 산소를 최소한으로 소비한다. 생물은 다 살게 끔 진화하였다는것이 새삼 신기하다. 동물원에서는 먹이를 줄 때 물고기 ㎏당 3g의 소금을 넣어줘야 한다. 냉동돼서 들어오는 물고기가 해동되면서 염분이 빠져나가기도하고 물범은 생리적으로 나트륨 요구량이 육지 포유류 보다 높기에 보충이 필요하다.

바다에 살아야 할 물범이 지하수와 수돗물에서 살면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 물론 물고기가 아닌 물 밖에서 숨쉬는 포유류이기에 민물에서도 살 수는 있지만 스트레스 등에 의해 면역력이 낮아지면 만성 안질환과 피부병에 걸리기 쉽다.

최근 나이든 물범들에게 마지막 여생을 바닷물에서 살게 해주고 싶어 받아줄 여러곳을 타진해 보았다. 다행이 제주 성산포의 대형수족관에서 받아줄 의사를 보였고, 현재 추진 중이다. 마음 같아선 서해바다로 보내주고 싶었으나 유전자 확인 결과, 백령도 물범과는 다른 종이고 울산 고래연구소의 물범 전문가의 자문을 들어보니 나이 많은 물범들이 야생에 적응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물범이 제주도로 가고 나면 동물원에 살던 암컷 수달과 더불어 자연에서 구조됐으나 자연방사가 어려운 수달들을 데려올 계획이다.

얼마 전 동물원 근처에서 야생수달도 발견됐으니 동물원은 나름 수달이 살만한 환경온도를 제공해 줄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동물원에 살고 있는 암컷 수달의 집은 워낙 좁아 사회적 거리(?)를 원하는 수줍은 암컷 수달을 직원들조차 좀처럼 볼 수가 없다. 물범에게 좁게 느껴졌던 수조였지만 크기가 작은 수달들에게는 안정감을 느낄 거리를 확보해 주어 앞으로 수영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줄 것으로 기대한다. 더욱이 수달은 자신의 영역표시를 위해서 물 밖 바위에 분변을 모아놓는 행동을 하는데 물범이 있을 때 빈번하게 갈아주었던 수돗물을 절약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동물원은 더 많은 야생동물을 소유해 볼거리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김정호 진료사육팀장
김정호 청주랜드 진료사육팀장

그런 이유로 동물구입 목록에는 외국에 사는 특이한 외모를 가진 동물종이 늘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이국의 동물들은 우리나라 기후와 맞지 않아 오래 살지도 못하고 사는 동안에도 여름냉방과 겨울난방으로 많은 연료를 사용한다. 멸종위기동물 보전에 앞장서야하는 동물원으로서 온실가스 생산과 자원낭비는 모순이다. 앞으로 동물원은 토종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일을 하며 자연과의 공존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윤리적인 것은 지속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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