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성진 농협중앙교육원 교수

얼마 전 모 TV에서 남성 4명이 한 팀을 이루어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보았다. 다들 엄청난 공연을 보여 주었지만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윤동주 시인의 '무서운 시간'이라는 시에 곡을 붙인 노래였다. 모두 잘 했건만 왜 그 가곡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을까 생각하다 한 가지 이유를 떠올렸다. 다른 노래들은 외국어로 불렀던 반면, '무서운 시간'은 우리말로 불렀다는 것이다. 외국곡은 눈으로 이해는 했지만, 귀로 들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우리 노래에 비할 수 있을까?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라는 가사가 들리면서 윤동주 시인의 나라 잃은 마음의 아픔까지 느꼈던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코로나 19로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데 재미를 붙였다. 요즘 트렌드 중 하나가 반려식물이라는데 어렸을 때 동물을 키웠던 느낌과 흡사하다. 전날 좀 시들해서 물을 주었는데 아침에 보면 생생하게 다시 활력을 되찾거나, 화분이 좁은 듯하여 분갈이를 해주었는데 새잎을 내는 것을 보면서 반려라는 단어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안되는 게 키우는 식물 이름 외우기다.

다른 나라가 원산지이지만 이름은 그래도 한글인 '석화', '꽃기린'은 좀 낫다. 그리고 하도 많이 들어 이젠 익숙해진 '로즈마리', '투스키'도 좋다. 하지만 이름도 생김도 낯선 식물들은 정말 외우기 어렵다. 분명 뭐라고 했는데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한다. 그래서 흥부 집에서 '화초장'을 강탈한 놀부가 그 이름을 잊고 "고초장, 된장, 간장, 뗏장, 초장화, 장화초, 방장, 천장, 송장, 접장"이라고 말도 안 되는 이름을 붙이는 행동을 나도 따라 하게 된다. 제발 쉬운 이름을 붙이면 안 되나? 차라리 우리 땅에서 자라는 풀이나 나무를 반려식물로 하면 안 될까?

게다가 토종식물은 우리 기후에 적응했다는 장점이 있다. 이름도 낯선 식물들을 위해 지난 겨울에 실내용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키웠다. 그래도 일부 식물은 죽었고 어떤 식물은 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리 기후에 익숙해진 식물이라면 굳이 이런 수고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맘까지 들었다.

포털사이트에 '베란다정원 야생화'로 검색하면 수많은 우리 땅의 야생화들을 실내에서 키우는 사이트가 나온다. 매발톱, 할미꽃, 민들레, 바위솔, 비비추 등 이름도 정겹다. 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고, 잘 자라는 식물들이다.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도 금방 알 수 있다. 매발톱은 꽃 위로 뻗은 꽃뿔이 매발톱을 닮아서 매발톱이고, 바위솔은 산과 바닷가 바위 위에서 붙어서 자라는 소나무 닮은 식물이다. 게다가 바위솔은 우리나라 토종 다육식물이기도 하다. 이런 식물을 반려식물로 키운다면 아무래도 다른 나라가 원산지인 식물들보다 정겹고 수월하지 않을까?

한류 열풍을 뜻하는 'K'가 우리 문화에 많이 붙었다.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그리고 코로나 19사태가 지속되면서 K방역, K스포츠라는 말도 새로 생겨났다. 그 만큼 우리 문화의 역량이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반증일 것이다. 우리의 토종식물도 K야생화로 세계에서 통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특산종인 구상나무가 세계로 퍼져 크리스마스 트리로 많이 팔리는 수종이 되었고, 또 다른 토종식물인 꽃개회나무가 미국으로 건너가 '미스킴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팔리는 나무가 되었다는 사실은 K야생화의 잠재력을 이미 보여주었다는 증거이다.

오성진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오성진 농협중앙교육원 교수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할 때 새로운 가능성이 나타난다. 우리의 야생화를 반려식물로 심고 가꿀 때 K야생화는 단어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로서 태동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류문화처럼 세계 많은 사람들이 K야생화를 문화로 즐기게 될 것이다. 우리 반려식물을 키우면서 그 날을 기대해 본다.

그렇다고 산야의 야생화를 무단으로 채취하는 것은 불법이니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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