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은 놀이터… 한세기 걸쳐 깨 볶는 화목한 가족들

삼대기름집 전경.
삼대기름집 전경.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1930년경부터 충남 천안 사직동에서 기름을 판매하는 방앗간이 있다. 방앗간 이름은 삼대기름집이다. 개성에서 기름집을 하던 1대 현재성씨가 남쪽으로 내려와 사직동 작은재빼기에 개성기름집을 열었다. 이후 2대 현석민씨, 3대 현원곤씨까지 가업이 이어졌다.

이런 오랜 전통으로 삼대기름집은 2018년 천안 전통업소로 선정됐다. 2016년에는 충청남도 가업승계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천안 토박이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기름에 대한 품질은 정평이 나있다. 이런 삼대기름집 이름이 곧 사대기름집으로 바뀐다. 증조부와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4대 현상훈씨(43)가 본업이었던 교직을 떠나 가업 승계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사장으로 불리는 현상훈씨를 찾아 삼대기름집의 옛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삼대기름집 내부.
삼대기름집 내부.

어릴 적 방앗간에 대한 추억은?

"집에 들어가려면 방앗간을 거쳐야했다. 늘 정겨웠다. 방앗간이 집이고 놀이터였다. 2007년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가업을 이어가고 계신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고 손님들이 방앗간에 오가는 모습을 쭉 지켜봤다. 그 당시 손님들이 '4대까지 이어지나'라고 물어보면 수줍어서 집으로 도망간 기억이 난다."

방앗간과 붙어있는 집에는 아직도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고 하는데 아들 입장에서 보다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했으며 하는 바람은 없나?

"방앗간 손님들은 부지런하다. 대목 때는 새벽에 문을 열어달라고도 한다. 일찍 방앗간 문을 열어야 하니까 부모님은 지금 집에 계시는 게 편하다고 하신다. 아주 어렸을 때 집은 디딜방아가 있는 초가집이었다. 37년 전에 지금과 같은 형태로 개축을 했다. 아쉬운 점은 초가집 당시 사진이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릴 적에 봤던 손님이 지금도 기름집을 찾나?

"물론이다. 10분 중에 1분은 어렸을 때 봤던 분들이다. 80~90대 고령의 손님들도 많다. 특이한 건 기름집 주인도 대를 잇지만 손님들도 대를 잇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녀를 이끌고 며느리를 데리고 기름집에 찾고 그 분들이 또 단골이 되곤 한다."

현상훈씨가 방앗간에 일을 하고 있다.
현상훈씨가 방앗간에 일을 하고 있다.

가업을 이어받겠다는 결심을 한 배경이 있나?

"어릴 적에 어머니와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할 정도로 방앗간은 바빴고 부모님은 쉬지 않으셨다. 난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육상을 시작했고, 충남 대표로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충남체고와 충남대에 진학했고 2006년 교직에 입문했다. 신촌초와 성환촌에서 10년 동안 교사를 근무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어머니는 췌장암과 함께 우울증까지 겪으셨다. 아버지 혼자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7~8개월 지켜보다가 방앗간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이제 방앗간에 들어온 지 4년이 됐다."

삼대기름집에 판매하는 기름들.
삼대기름집에 판매하는 기름들.

교직을 버리고 방앗간 일은 한다고 했을 때 아내가 반대하지는 않았나?

"아내(김형선)가 처음에 싫어했다. 휴일이 없어지고 힘든 노동일을 해야 하니까 안쓰러워했다. 그래도 집안 사정 전반을 고려해 완강하게 반대를 하지는 않았다. 이제 4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허리와 손목 등에 통증이 많다. 직업병인 것 같다. 아내는 혹시라도 아이들이 5대째 가업을 이어받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5대 기름집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큰 아이는 13살 현솔민, 작은 아이는 10살 현지민이다. 아이들이 방앗간에 놀러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버지도 1주일에 한 번은 가족식사를 하자는 원칙을 세워놓으셨다. 아이들이 방앗간에 올 때 마다 뭔가 일을 한다. 큰 아이는 깻묵을 담는 일을, 둘째 아이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요구르트와 건빵을 나눠주는 일을 한다. 기본적으로 가족 경영이 불가피한 기름집은 화목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방앗간은 사랑방이다'가 경영 철학이라고 할 수 있고 일을 할 때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세요'가 주된 인사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손님들이 먼저 5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부모님은 나에게 가게를 이어받으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대물림이라는 게 쉽지 않다. 나 또한 강요하지는 않겠다. 본인들이 결정하면 존중할 것 같다."

필리핀 가족여행,
필리핀 가족여행,

기름집은 가족 경영이 불가피한 이유가 있나?

"할아버지가 하셨을 당시에는 식용유라는 개념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전국의 깻묵을 다 매입해서 식용유를 만드셨다. 어렸을 적 기차에서 깻묵을 내려 트럭에 옮겨 실고 방앗간으로 와서 식용유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6명이나 됐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식용유가 대량 생산됐고 방앗간의 식용유는 경쟁력을 잃게 됐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모두 떠났다. 지금은 힘든 일을 하시려는 분들도 없고 대량생산 보다는 질 좋은 기름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깻묵을 나르고 있는 현상훈씨의 아들 현솔민군.
깻묵을 나르고 있는 현상훈씨의 아들 현솔민군.

현상훈씨가 꿈꾸는 미래의 사대기름집은?

"가게에 들어와서 시설을 최대한 현대화했다. 또 벽이나 바닥, 착유기 시설의 청결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달 대청소와 개보수를 하고 있다. 최고로 깨끗한 집이라는 명성이 욕심난다. 또 온라인(www.4dae.co.kr)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충남 전통가옥 선정과 90년 간의 신뢰가 온라인에서 인정을 받고 있어서 주문량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기름은 어떤 참깨나 들깨로 어떻게 로스팅을 하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커피 로스팅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4대로 이어지면서도 처음의 맛을 잃지 않고 더 발전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또 부모님은 일 때문에 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않으셨다. 방앗간을 쉬더라도 가족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