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바람 한 점 없는 새벽이건만 생글생글 살랑 거리는 몸짓은 교태라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어제 해질녘에 내 길벗과 마당에 들어 올 때는 목말라 죽겠다고 온 몸을 비비 꼬며 어깨가 축 쳐지더니 맑은 물 몇 모금 먹였다고 밤사이 저리도 행복하다. 덩달아 이른 새벽 뒤꼍 밭에 앉아 나도 행복에 젖는다. 오이, 토마토, 가지, 고추는 튼실한 먹을거리 주렁주렁 달고, 취나물에 당귀, 상추 쑥갓, 아욱은 반짝반짝 이파리에 윤기를 더하며 몸짓으로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오늘 아침엔 첫 수확을 한 완두콩 한줌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한다.

"워찌 이렇게 일찍 나오시유? 뭐 좋은 일 있어유? 엄청 좋아보여유." 뒷집 아주머니는 뭐 대단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면서 새벽부터 설치는가 싶은 모양이다. "이거 땄어요." 신기해서 들여다보고 있던 완두콩 너더댓 깍지를 자랑하는 나에게, 아침밥 앉힐 때 넣으라고 깐 완두콩을 한 사발 주는 게 아닌가. 자랑하던 손이 어찌나 민망한지 계면쩍어하는 나를 보고 구엽단다. 귀여운 게 아니고 구엽다고 한다. 70대 귀요미가 되어 부끄럽지만 올망졸망 영글어가고 있는 블루베리 아가들에게 미소를 보내며 무마했다.

나는 아침잠에서 깨면 주방 뒷문을 열고 반겨주는 생명들과 행복을 나눈다. 행복에 겨운 이 시간이면 어제 만났던 인연들이 안타깝다. 누구는 무엇으로 인해서 또 누구는 다른 무엇 때문에 걱정 근심이 끊이지 않는 인연들이다. 여기 뒤꼍 밭에 앉아서 네 둘레를 살펴보니 내가 제일 행복하다. 참새들이 맞장구를 치며 감나무에서 촐랑거리고 아침 먹으러 온 길고양이는 아예 내가 먹을거리로 보이는 듯 입맛을 다신다. 상추가 하도 푸짐해서 아랫도리 잎을 떼어내면서 "바람이 통하게 해주는 거란다." 마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설명을 한다.

내 손으로 묻어 준 씨앗이 움을 틔우고 생명이 되어 풍성하게 행복을 엮는 다는 것이 신비롭다. 내가 탄생시킨 생명들이라 그런지 특별한 정감이 간다. 쑥갓 씨를 뿌릴 때는 날이 가물어서 드문드문 올라와 안타까웠지만 얼마 전 비온 뒤 보충 씨를 묻어 준 것이 요즘 아주 예쁘게 옹알이를 한다.

아들딸 낳을 때의 행복과는 또 다른 맛이다. 우리 아이들 키울 때는 왜 이런 행복을 몰랐을까, 더 깊은 행복이었을 텐데…. 생각하다가 무릎을 쳤다. 욕심이다. 현재의 행복에 만족 할 줄 모르고 내 아이 최고로 키울 욕심에 미래를 미리 앞당겨 걱정을 한 것이다. 아이의 옹알이 앞에서 행복해 하면서도 그 행복의 뒤엔 욕망 보따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 꼭 이루게 하리라.' 이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그때는 몰랐다. 텃밭에서 느끼는 이런 행복은 가슴에 욕망을 담고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행복이다.

소확행이란 바로 내게 달라붙어 있는 잡동사니들을 다 씻어내야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일전에는 아직 잠자리서 뭉그적이고 있는 시간에 인기척이 있어서 나가보니 소설가 선배가 비 온다면서 자기네 화단의 꽃모종을 뽑아와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직접 심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달착지근한 시내가 흐르고, 세상은 아름답다. 나보다 오륙년 아우지만 글 쓰는 사람이 밥그릇 수보다 글이 더 중요하기에 선배라고 한다. 일이년 전만해도 늙은 집보다 가꾸지 못한 집이 창피해서 개방을 못하던 초라한 집을 도깨비 아우님들과 이 선배가 열어젖히게 해 주었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내가 세상에 먼저 왔지만 나보다 훨씬 현명하게 사는 아우님들이 있어 나를 잡아 준다. 창문 열고 책상에 앉은 지금도 호랑이 콩의 이랑 끝에 두 포기 심어 놓은 고수가 안개꽃처럼 소복하게 꽃을 피워 분위기를 살린다. 내 영혼에 잡동사니들 내려놓으면 눈에 띄는 모든 물상이 행복을 준다. 이런 행복을 알지 못하고 아등바등했던 지난 세월이 부끄럽지만 삶의 수순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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