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문화적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우리의 장례 모습은 슬픔 속에 엄숙한 의식으로 진행되지만, 아프리카나 남미 일부에서는 시종일관 축제 분위기로 치러진다. 서구에서는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들은 자녀의 삶에 거의 간섭하지 않지만, 우리는 끝없이 간섭하고 자녀들의 자녀들까지 돌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한국의 애완견들이 주인의 품에 안겨 다니거나 강아지 유모차를 타는 경우가 많지만, 서구인들은 이런 현상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코로나19 확산과정에서 나타난 마스크 착용문제도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서구사회에서는 마스크를 거의 착용하지 않는다. 마스크는 떳떳치 못한 사람들이 쓰거나 무언가를 감추려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쓴다는 개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소통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마스크 때문에 단절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소통방해라는 통념이 동양적 사고와 서로 충돌한다.

마스크 착용여부는 개인의 자유라는 서구사회 특유의 인식도 작용한다. 서구사회는 우리와 달리 개인적 자유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감염병 유행의 심리학'을 쓴 스티븐 테일러는 사람들은 무언가 해야 한다고 들으면, 그 조치가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연스럽게 저항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크게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마스크 거부 선언을 한 오하이오주의 비틀리 주하원의원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마스크를 쓸 수는 있지만, 정부가 마스크 착용을 명령하거나 강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했다. "나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강요해선 안 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개인의 자유가 국가의 강요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국민들에 마스크 착용을 마지못해 권고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가 마스크 제조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마스크를 착용하지는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구사회에서는 마스크는 아픈 사람이나 쓰는 것이며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은 뭔가 떳떳치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독일에서 한국인 유학생이 마스크를 쓰고 전철을 탔다가 조롱을 당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지인들은 이 학생 부부를 환자로 취급하며 조롱에 인종차별까지 했다. 이 역시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문화적 차이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다. 실험에서도 이런 결과는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나라의 한 언론사 취재기자가 마스크를 쓰고 거리에 나가자 모두 기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화결정론(cultural determinism)적으로 보면 모든 인간은 문화적 배경의 지배를 받는다. 한 개인의 행동은 그가 소속한 문화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 이성적으로는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맞다. 우리 문화에서는 장례식에서는 슬퍼하는 것도 맞다. 춤추고 즐겁게 노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를 달리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문화는 특정한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 문화가 다르면 가치규범 자체도 달라진다. 이런 차이에 따라 물리적 충돌을 낳을 가능성도 커진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도 모두 대립적인 문화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세스러운 이야기지만, 필자의 두 딸도 현재 심각한 코로나 상황에서 미국과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다. 걱정이 많다. '똘레랑스(tolerance)'의 의미가 더욱 새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모든 충돌상황에서 평화는 평온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관용과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똘레랑스를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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