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일 팔라초 호텔. / 건축의 탄생에서
일 팔라초 호텔. / 건축의 탄생에서

언제나 정해져 있는 귀족의 삶을 지겨워했던 루시는 관습적인 삶에서 조금은 벗어나고픈 마음에 사촌언니 샬롯과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의 어느 호텔에서 며칠 묵게 된다. 그러나 두 여인은 호텔방의 전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레스토랑에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던 차에 어느 영국인 중년 에머슨은 그녀들에게 다가와 방을 바꿔주겠다는 말을 건낸다. 나쁠 것 없는 제안에 그녀들은 흔쾌히 수락한다. 에머슨은 자신의 아들 조지와 함께 방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는 방을 바꿔준 대신에 여인들에게 조건을 내건다. 자신의 아들과 친구가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에머슨은 자신의 아들이 비관주의에 빠져있어 많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여행지에서 만난 루시와 조지는 서로의 다른 점에 이끌리다가 결국 우여곡절 끝에 서로 사랑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이 E.M 포스터의 '전망좋은 방'의 소설의 줄거리이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일본에 있다.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일 팔라초 호텔(Hotel Il Palazzo, 일본 후쿠오카, 1987~1989)이다. 후쿠오카 하카타 하루요시 지역 재개발 사업으로 일본상점관리센터(JASMAC)의 소유주는 나카강 둔치에 호텔을 하나 짓고 싶어했다. 건축주는 자신의 지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베니스 세계극장과 산 카탈도 국립묘지를 설계한 세계적인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에게 호텔 설계를 의뢰했다. 로시는 재개발로 들쑥날쑥해 있는 나카강이 너무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호텔은 지역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지역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건축이 필요했다. 로시는 문득 E.M 포스터의 전망좋은 집이 떠올랐다. 방 하나가 매개가 되어 사랑을 이룬 소설은 결국 호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 밖에 있는 아름다운 전망이 아니라 호텔에서 머무는 사랑과 삶이라고 로시는 생각했다. 그래서 로시는 텅빈 방에서 볼품없는 전망을 볼 바에는 호텔의 창을 모두 없애 버리고, 호텔 안에서 이루어질 삶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일 팔라초 호텔의 건축은 시작되었다.

로시는 '새로 지어지는 건축은 주변 건축을 모방해서는 안된다. 새 건축은 지역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며, 주변 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로마건축양식을 가져온다. 호텔의 전체는 이란산 붉은 트레버틴 벽돌로 마감하고, 층간 구별을 위해 정면부에 녹색 동판으로 마감한 상인방을 층별로 설치했다. 거기다가 로마시대에나 있을 법한 굵은 기둥을 전면에 반복적으로 나열해 마치 그리스 신전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호텔을 하나의 도시로 보이기 위해 건물의 양쪽에 작은 별채들을 배치했다. 게다가 호텔 앞마당에 숙박객들이 강의 경치를 즐길 수 있게 이탈리아식 광장을 설치했다. 그 외에 공공공간은 일본 건축가인 우치다 시게루와 객실은 미츠하시 이쿠요가 참여해 디자인했다.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로시는 언제나 건축에서 장소성을 강조했다. 이 공간에서 겪는 경험으로 기억을 되살려 고대 이탈리아의 장소를 그대로 이전해 투숙객에게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만 같은 경험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로시의 건축은 성공했다. 아주 독특한 형태의 호텔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미국 AIA상과 후쿠오카 도시경관 상 그리고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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