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돈 천안시장의 보령머드축제 신화' 그 이유는
'박상돈 천안시장의 보령머드축제 신화' 그 이유는
  • 유창림 기자
  • 승인 2020.07.05 1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령머드축제에 참가한 관광객들. 중부매일DB
보령머드축제에 참가한 관광객들. 중부매일DB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 코로나19 여파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보령머드축제(7월 17~26일)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보령머드축제를 논하면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박상돈 천안시장이다. 박 시장은 지난 천안시장보궐선거에서도 대표 수식어로 '보령머드축제 신화를 연 인물'이라는 표현을 섰다. 또 최근에는 온라인 보령머드축제 안내를 자신의 SNS에 공유하며 남다른 애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보령머드축제는 1998년 7월 1회 개최를 시작으로 이번 온라인 축제까지 23회를 이어오고 있다. 박상돈 천안시장의 보령시장(구 대천시장) 재임기간은 1994년 3월에서 1995년 1월까지 10개월여에 불과했다. 혹자들은 보령머드축제 첫 개최 시점과 박 사장의 보령시장 재임시점을 이유로 보령머드축제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런 의구심과 상관없이 박 시장을 기억하는 보령시청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박 시장의 보령머드축제 신화에 동의를 표한다. 좀 더 세밀하게는 보령머드를 상품화하고 대천해수욕장을 이용한 축제 요소로 발굴한 주인공이라고 박 시장을 표현한다.

1994년 박 시장의 보령시장 재임시절 보령시의 주력 산업은 탄광산업이었다. 그러나 1989년 정부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에 따라 석탄 소비는 극감하고 있었고 보령의 대체산업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었다. 대체산업에 고민하고 있던 그의 눈에 들어 온건 천혜의 관광자원 대천해수욕장이었다. 그러나 전국 수많은 해수욕장과 차별화 없이는 한계가 있었다. 묘수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그는 우련히 본 영화 '플레이어'에서 답을 찾았다. 남녀 주인공이 진흙 사우나탕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던 것이다.

보령에는 총 연장 136km 달하는 리하스식 해안이 있어 진흙이 풍부하다. 그는 곧장 보령머드의 상품성을 타진했고 전국 주요해변의 머드 성분을 비교분석한 당시 원광대의료원장 김재백 교수의 논문을 통해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사해 머드와도 견줄 수 있다는 확신까지 섰다.

박상돈 천안시장의 저서에 보령머드축제 신화를 연 인물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박상돈 천안시장의 저서에 보령머드축제 신화를 연 인물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박 시장은 그해 7월 대천해수욕장 개장과 함께 플라스틱 욕조와 침대를 긴급 설치하고 관광객들을 상대로 진흙마사지 체험을 권했다. 수영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진흙을 뒤집어쓰고 거닐며 휴식하는 모습은 그 당시 일종의 충격과 신선함을 전달했고 신문과 방송, 잡지 등의 대박 취재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이렇게 시작된 보령머드는 1995년 경영행정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됐다.

박 시장은 "그해 충남도청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에게 최우수상을 안고 내려오던 보령시청 직원에게 걸려왔던 전화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저서 '박상돈 천안다움을 생각하다'에서 밝혔다.

박 시장은 이 저서에서 "시장 직에서 물러난 뒤 김학현 초대 민선시장은 축제전문가 정강환씨에게 연구용역을 주었고 마침내 '보령머드축제'가 탄생했다. 보령머드축제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후임 신준희 시장, 또 이시우 시장과 김동일 시장은 계속해서 축제 콘텐츠를 새롭게 다져나갔고 보령머드축제는 어느새 외국인도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글로벌여름축제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