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四季)가 주는 자연의 선물. 싱그러운 공기. 생명의 근원인 물. 보이지 않는 사랑. 너무 귀해서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은 오히려 값이 없다. 그동안 우리는 값없이 선물로 받은 것들을 귀한지 모르고 당연하게 누리며 살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19 바이러스란 불청객으로 인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평범한 일상의 삶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오늘이다.

시골에는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다. 행여 밖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뉘 네 집 손주들이 왔나?' 지팡이 짚고 일부러 나와 굳이 확인을 하실 정도다. 지금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이곳에 터를 잡고 대를 이어 농사지으며 살 젊은이들이 없다. 마을회관에 할머니가 일곱 분이면 할아버지는 두 세분. 유모차를 밀고 다니시는 할머니는 있어도 할아버지는 보기 어렵단 말인즉 할아버지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말이다. 주민 평균연령이 70세 이상이니 농촌 고령화의 심각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님은 막내아들 품에서 돌아가셨다. 장례 후 "올케. 우리 어머니 잘 모셔줘 고맙고, 마지막 가는 길 꽃같이 보내줘 정말 고마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음에도 시누님의 진심어린 인사와 치사를 받았다.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고단한 인생길 살다 가신 어머님. '질부가 고생 많았다'는 경주 김씨 어르신들 칭찬까지 받았으니 제법 인생을 잘 살았다 자부심을 가져도 될 듯싶다.

마치 어머님이 주고 가신 선물처럼 내 몫의 땅이 주어졌다. 구름과 달이 흘러가는 낙가산(洛迦山) 자락, 생태하천 월운천(月雲川)을 앞에 둔 엄마 자궁 같은 안락한 곳에 터를 잡았다. 초록의 숲과 맑은 물.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농가주택을 짓고 묵은 땅을 기경했다. 처음 이 곳에 들어와 힘들었던 것은 대대로 살아 온 원주민들이 받아 온 혜택을 이방인에게 절대 허락(許諾)하지 않는 것이다.

나라법보다 마을사람들이 정해놓은 규약이 우선이라니 차라리 눈 감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언제쯤이나 원주민과 이방인의 경계없는 소통이 이루어 질 수 있을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 교육을 시작으로 하나 둘 농사일을 배워갔다. 집 뒤에 꿀통 하나만 두어도 벌들이 물어다 주는 토종꿀을 온 가족이 먹을 수 있을 것이란 야무진 꿈을 꾸는 어설픈 초보농사꾼이지만 말이다.

농업인 실용교육. 그것은 목마름을 해갈 해 주는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관심작물에 대한 이론과 실제 강의를 전문가에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농업벤쳐대학에서, 나는 생활개선회의 다양한 체험교육을 통해 농촌자킴이로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농촌이 건강해야 대한민국이 건강하고 농민이 건강해야 국민이 건강해질 수 있다. 농촌생활 문화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이만하면 농촌에서 살 만하다 말 할 수 있다. 젊은 날 오지마을 농촌봉사활동을 갔던 뜨겁고 강렬했던 추억이 어쩌면 오늘 이곳 농촌에 머물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오늘도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마을 방송이 들린다. "아~ 아~ 알려 드리것습니다. 아랫동네 살던 뚱순이네가 윗마을로 이사와 마을회관에 떡을 냈습니다. 어서들 오셔서 뚱순이 떡을 드시기 바랍니다." 꾸밈없는 노인 회장님의 이런 생방송쯤은 언제든지 다시듣기가 가능한 마을.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에서 머루랑 다래랑 먹고 농촌에 살으리랏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농촌별곡(農村別曲)을 쓰며 행복한 순간순간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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