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신데렐라 이야기가 구석기 시대까지 이어져 있다면 믿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마저 다루는 책이 있다. 일본의 저명한 종교학자이자 철학자인 나카자와 신이치가 쓴 '신화, 인류 최초의 철학'이란 책이다. 그 책에서 저자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전세계에 450종이 넘는다며 그 중 중국판 신데렐라 이야기에 주목한다. 거기에선 물고기 뼈가 중요한 상징물로 나온다. 중국판 신데렐라인 섭한의 계모가 물고기를 죽여 그 뼈를 퇴비 밑에 숨긴다. 섭한이 그 뼈를 추려 방에 숨겨 두었다가 원하는 것을 그 뼈에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섭한이 갖게 된 초자연적인 중개 능력은 머나먼 수렵 시대부터 존재해왔던 동물 뼈를 다루는 법에 관한 윤리 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이처럼 아득한 곳까지 이끌고 간 저자는 그에 멈추지 않는다.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중국 즉 유라시아 곳곳의 신데렐라 이야기들을 비교 분석해 의미들을 끌어낸다. 아궁이, 신발, 왕자(왕)는 공통으로 등장하며 요정, 나무, 새, 물고기, 물고기 뼈 등이 나라별로 변주되며 나타난다. 유라시아에 이어 그는 아메리카의 미크마크 인디언으로 건너뛴다.

몽골로이드 계통의 이 인디언의 신데렐라 버전과 유라시아 신데렐라 버전들 사이에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후자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것은 왕자(왕)이며 신데렐라는 그런 왕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초자연적인 중개자의 힘을 빌어 아름답게 꾸미고 기다린다. 미크마크 인디언 신화에선 위대한 사냥꾼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불에 덴 흉터가 있는 소녀에겐 그가 보인다. 그녀는 아버지가 준 낡은 모카신을 신고 그에게 다가가 알아본다. 보이지 않는 차원의 세계가 대두되며 그것을 향해 가는 불에 덴 흉터가 있는 소녀 역시 모험적이다. 유라시아 버전들에 비해 우주적이며 심오하다. 머나먼 수렵 시대에 존재했음직한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로 갈라져 흐르다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신화의 원형을 간직한 반면 유라시아의 버전들은 변형들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콩쥐 팥쥐'를 그 책에 소개하고 있지는 않다. '콩쥐 팥쥐'에 나오는 두꺼비, 새, 선녀 역시 신화성이 매우 깊다. 이것이 어떤 경로로 알려졌는지 알기 어렵지만 그 연원이 어디까지일지 매혹적이며 지구적인 문화의 맥락 속에 있음이 신기하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이러한 탐구를 통해 저자는 신화가 인류 최초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나는 신화도 좋아하고 철학도 좋아한다. 그 거대한 두 세계가 저 한 문장으로 인해 깔끔하게 이어짐에 행복감이 왔다. '우리가 오늘날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것은, 신화가 처음으로 개척해서 그 후에 전개될 모든 것을 선점해둔 영토에서, 자연아의 대담함을 잃은 신중한 걸음걸이로 뒤쫒아가려는 시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자의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신화는 가치를 인정받기 보단 허드레 취급을 받는 경향이 크다. 과학에 치이고 합리성에 의해 산산조각난다. 그럴듯한 성공 신화, 티브이, 광고, SNS 등에 넘치는 이미지나 이야기들이 그 신화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 등의 지식인들이 기만적인 신화 파괴에 온힘을 기울인 시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그런 노력들을 비웃듯 흘러간다.

물질만능주의, 과학주의 등으로 인해 현대 사회엔 철학 역시 실종되다시피 되어 있다. 그러나 보라. 신화와 철학을 실종시킨 세계가 인간을, 인류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코로나 사태를 보더라도 자명하다. 진정한 철학의 부활이 필요하다. 진정한 신화의 부활 역시 절실하다. 인류사와 더불어 태동된 신화의 원형엔 병든 현대의 문제들마저 치유할 건강한 생명력과 창조성이 풍부하다. 법고창신이 특히 유효한 시대이며 법고의 고(古)는 이 아득한 상류에도 적용된다. 가장 큰 울림의 법고창신일 것이다.

키워드

#문화칼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