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 호수공원의 아는 오리
오창 호수공원의 아는 오리
  • 중부매일
  • 승인 2020.07.15 1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물&사람]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레이져빔 치료를 받고 있는 오리. 레이져빔이 눈에 좋지 않아 시술하는 치료자, 보정자, 오리가 모두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레이져빔 치료를 받고 있는 오리. 레이져빔이 눈에 좋지 않아 시술하는 치료자, 보정자, 오리가 모두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수년 전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 갔다가 20m가 넘는 '러버덕'이라는 대형 고무오리를 본 적이 있다. 비현실적인 크기에 놀라면서도 즐거웠다. 호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러버덕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일부러 찾아오신 분들이었다. 서울 이외에도 전세계 도시 곳곳에 갑자기 나타난 러버덕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러버덕은 네덜란드 작가가 세계를 여행하는 오리를 컨셉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충북 청주 오창 호수공원에도 러버덕만큼 즐거움을 주는 오리들이 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어떻게 살게됐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 오리들의 존재는 오창 사람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다. 어느 날 오창호수공원을 관리하는 오창읍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오리들 중 한마리가 다리를 절룩거려서 치료를 해달라는 시민들의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데, 문의할 때가 마땅치 않아 동물원에 연락한 것이라고 했다. 외부동물 진료는 동물원 업무 범위를 넘어서 고민하다가 읍사무소로 갔다. 읍사무소 한쪽 구석에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속을 들여다보니 평범한 하얀색 오리가 들어 있었다. 가까이가 살펴보니 오리의 오른쪽 다리 관절이 부어있었다. 가축의 운명으로 태어난 일반 오리는 태어난지 45일쯤이면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관절이 아플 정도로 오래 살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아프더라도 오리가 병원치료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환자로서 진료의뢰가 들어왔고, 상자에 갇혀 풀이 죽어있는 오리의 모습이 신경쓰였다. 오리가 담긴 상자를 싣고 동물원에 돌아왔다. 데려온 오리의 치료를 위한 격리장에 넣고 조류의학책을 뒤적이다가 야생동물인 맹금류에게 쓰이는 재활치료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대학동기 중 서울 동물병원에서 개와 고양이에게 재활치료를 하는 친구가 있어 자문을 요청했다. 고맙게도 친구는 직접 동물원에 방문해 오리다리의 통증 경감과 관절세포증식을 위해 실시하는 레이져 치료법을 알려주었다. 치료시 발생하는 레이져빔이 눈에 좋지 않기 때문에 시술하는 치료자, 오리를 잡고 있는 보정자 뿐 아니라 오리에게도 선글라스를 씌웠다. 소형견용 선글라스가 오리에게도 잘 맞아 웃음이 나왔다. 또 오리 자신의 혈액을 추출해서 관절에 주입하는 자가혈치료술도 배웠다. 그 후 재활치료법을 익힌 동물원 수의사들은 오리를 서너번 더 치료했고, 한달쯤이 지나자 눈에 띄는 효과가 있었다. 불편했던 오른쪽 다리관절에서 부종이 빠지면서 땅을 디딜 때 힘이 들어갔다. 오른쪽 다리만으로 땅을 지지하면서 왼쪽다리를 들어 가려운 뒤통수도 긁었다. 걸음걸이도 휠씬 자연스러워졌다. 오리를 치료하는 동안 다른 소식도 들려왔다.

지금 치료받고 있는 오리가 동물원으로 오기 전에 알을 낳았는데, 오창에 있는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가져다 인공부화기를 넣고 돌렸더니 알에서 새끼 오리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태어난 새끼 오리는 태어나자마자 보게 된 센터 직원에게 각인되어 어미인줄 알고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고 했다. 동물원에 있는 진짜 어미에게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오리가 온지 5주가 됐다. 오리걸음이 거의 완전해져 오창호수에 다시 데려다 놓기로 했다. 읍사무소 직원을 만나 오리가 담긴 상자를 같이 들고 다른 오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돌아온 오리가 반가운 시민들도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그러나 정작 오리를 풀어주자마자 수컷오리가 달려와 머리를 물었다. 걱정이 돼서 제지하려는 마음도 있었으나 오리들에게 맡겨보기로 하고 관찰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그랬냐는 듯이 수컷오리는 돌아온 암컷오리와 한가롭게 수영을 했다. 안심한 우리들은 오리들을 뒤로 한채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토요일 아내는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들떠 있었다. 그런 아내를 남겨두고 딸과 강아지를 데리고 오창호수공원으로 소풍을 갔다. 사실 소풍도 하면서 오리가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멀리서 보니 오리들은 호수가에 나와 햇볕을 쪼이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강아지를 데리고 오리들 곁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경계심이 없는 오리들이지만 데려간 강아지를 보자 갑자기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수컷오리가 강아지 앞에 나와 암컷오리를 자신의 뒤에 숨겼다. 강아지가 더 다가오면 부리로 쪼을 기세였다. 어제 암컷오리의 머리를 물던 수컷오리가 오늘 보니 약한 암컷을 보호하는 듬직한 수컷이었다. 오리를 보고 있는 어느 가족에게 오리들을 아느냐고 물었다.

김정호 진료사육팀장
김정호 진료사육팀장

그렇잖아도 오리 한마리가 없어져 걱정했는데, 다시 돌아와 다행이라고 했다. 오창호수공원의 오리들은 전시기간이 정해진 러버덕보다 오랜동안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다. 곧 어미를 만나게 될 새끼 오리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동물원에는 또 다른 오리가 입원하고 있다. 오창호수공원의 오리 중 한마리가 한쪽눈에 눈꼽이 끼고 앞을 잘 못 본다고 해서 데려온 것이다. 나는 다시 조류 안과책을 뒤적이고 있다.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김정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