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지난해 가을 사창사거리 대로에서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리며 풀을 뽑고 있는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연로하신 분이 풀을 뽑고 있어 안쓰러우나 공공근로 작업이지 싶어 마음이 놓였다.

그 후 곳곳에서 자주 목격되었다. 시계탑, 사창시장, 충북대병원까지 사창동 일대 대로변은 물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골목길까지 풀을 뽑고 있다. 늘 혼자인 것으로 보아 공공근로 작업이 아니라 자발적 봉사인 듯싶다. 허리춤에는 괴나리봇짐처럼 호미와 풀 갈퀴를 매달고,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며 풀 뽑는 모습이 자닝하다.

할머니를 만날 적마다 약속 시각에 쫓겨 수고하신다는 말만 하고 지나쳤다. 하루는 시간이 있어서 눈여겨보았다. 무릎 관절이 매우 아픈지 쪼그리고 앉질 못한다. 호미처럼 허리를 구부려 엉거주춤 풀 뽑는 모습이 그 옛날 친정엄마를 보는듯해 우두망찰했다.

친정엄마는 과수원과 정미소를 하는 부농의 따님이었다. 충북 첫 중등학교인 청주농업고등학교 동기생인 양가 할아버님들의 약조 때문에 오지마을로 시집을 온 것이다. 부잣집 따님이 없는 집 맏며느리도 힘들었을 텐데 40세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오랫동안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때 올망졸망한 팔 남매와 빚만 남겨주고, 사랑하는 아내 곁을 떠난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자식들 잘 키워놓고, 떳떳하게 당신 곁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농번기에는 농사일과 삯바느질, 농한기에는 보따리장수까지 지난한 삶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험난한 눈보라에도 천둥 번개 치는 악천후에도 집안과 자식을 위해 마부작침(磨斧作針)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으리라.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밤을 낮 삼아 일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는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으니.

엄하기도 엄청 엄하셨다. "잘하면 본전이고 조금 못하면 아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 듣는다."라며 행동거지 조심하라는 말을 달고 사셨다. 애면글면하는 엄마를 보면서 팔 남매 모두 반듯하게 자랐다.

젊은 시절 웬만한 남자보다도 큰 165cm 키 때문에 허드레 장승이란 소리를 들었단다. 여장부 스타일의 엄마가 천국으로 가실 때에는 야위다 못해 호미처럼 등이 굽어지고 탈피각으로 변했다, 호미만 보면 고생만 하다 가신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엊그제 충북대병원을 다녀오는데 할머니가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주변을 돌아보니 예상대로 근처에서 풀을 뽑고 계셨다. 측은지심에 편의점에서 생과일이 든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사들이면서 잠깐 쉬시라고 말을 붙였다. 사양지심에 손사래를 치신다. 무더위에 고생하신다며 손을 꼭 잡으니 고맙다며 맛나게 드신다.

내 집 앞도 쓸지 않는 사회 풍조에 비하면 할머니의 지역 사랑은 대단하신 듯하다.

수은주가 30도를 오르내리는 복더위에 비지땀을 흘리며 풀을 뽑는 할머니, 호미처럼 굽어진 겉모습과는 달리 미소 띤 얼굴이 평온해 보인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시 '마음 꽃'의 '꽃다운 얼굴은 한철에 불과하나 꽃다운 마음은 일생을 지지 않는다.'라는 시구가 떠올라 미소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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