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일 칼럼] 최동일 논설실장

사람들의 관심거리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데 돌고 도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그린벨트(greenbelt)만 해도 2000년대 초반 지방 중소도시 전면해제 등 대규모 조정이후 한동안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런 그린벨트, 즉 개발제한구역이 최근 아파트 가격 폭등 해결방안으로 거론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한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등 전국 14개권역 5천400여㎢에 달해 전국적으로 도시의 무분별한 개발과 팽창을 막는 녹색 방패막이였던 그린벨트가 또 다시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에 1971년 처음 도입됐던 그린벨트는 19세기말 산업화로 인한 도시문제로 큰 어려움에 처했던 영국에서 시작됐다. 이후 선진국 대부분이 같은 문제 해결책으로 비슷한 선택을 했으며 우리나라도 같은 처지였다. 지금 도마위에 올라 있는 서울은 1960년대부터 불이 붙은 지방인구 유입으로 주변지역이 급속하게 개발되는 문제가 생겼다. 이에따라 그린벨트가 우리나라에도 시행된 것인데 1980년대말 일부 규제완화에 이은 2000년대 초 대규모 해제전까지는 도시화, 산업화속에서 도시환경을 지킨 최후의 보루였다.

급속한 도시화에 무분별한 개발이 일상적이었던 시대였음에도 그린벨트가 녹지 철옹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산림녹화와 더불어 우리의 산야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는데 박 전대통령의 치적 가운데 경제부흥 보다도 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만큼 환경을 지키기는 어렵고, 한번 훼손된 자연환경을 되살리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당시로서는 의도치 않았더라도 이로 인한 교훈은 환경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요즘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시대를 뛰어넘는 정책이었던 셈이다.

물론 원 거주민의 불이익과 사유재산권 침해,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수종 결정 등의 문제도 있지만 그 성과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더 보호하고 확대시켜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지금의 선택은 거꾸로 가고 있다. 거듭된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회해 보겠다며 그나마 서울을 지키고 있는 그린벨트에 손을 대겠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숱한 고난을 감수하면서 지켜온 것을 지금 칼자루를 쥐었으니 마음대로 칼질을 해보겠다는 얘기다. 산림과 관련된 권한이라면 예전에 한때 위세를 떨쳤던 산감(山監)을 빼놓을 수 없다.

산감은 원래 절 소유의 산과 나무를 지키면서 땔감을 마련하는 일이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산에서 땔감 구하기가 쉽지 않게되자 산감들이 큰 위세를 갖게 된다. 보통 권세를 가진 이들이 산 주인이다 보니 이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평범한 농민들 위에 군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정작 주인의 의중과는 관계없이 자기 멋대로 일을 처리하고, 권세를 부리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처지를 망각한 이들의 말로(末路)는 하나같이 비루하고 처참했다.

서울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그나마 서울을 사람들이 살만한 곳으로 보호해주고 있는 그린벨트는 현 정권을 비롯한 역대 정권 가운데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최동일 논설실장
최동일 논설실장

이를 시작한 박정희 전대통령의 것도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것이며 서울시민들의 차지다. 누가 주인이고, 본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잊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환경은 단 한번의 실수로도 처참하게 황폐해질 수 있다. 산감이 됐다고 제멋대로 군 이들의 끝은 뻔했다. 무능한데다 막무가내라면 상황은 최악으로 간다. 길이 아니면 단 한걸음도 내딛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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