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오래 전이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서 두 다리를 매달아 놓고 꼼짝도 못한 채 누워만 있는 병실에 한동네 사는 지인이 양쪽 팔을 다 깁스를 해서 치켜들고 찾아왔다. 기가 막히는 상황에서, 그래도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으니 좋겠다고 했더니 지인은 그런 소리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니는 가려운데 긁을 수 있고 심심할 때 누워서 책이라도 보네요." 우린 서로 자신이 더 고통이라고 우겼지만 정답은 없다. 같은 맥락으로 양쪽이 다 고통이지만 누가 더 지옥 같은지 정답이 없는 왕따 문제를 두고 토론을 했다. 폭력적인 왕따와 은근히 정신적으로 피 말리는 은따이다.

내가 서울에서 심리상담사로 봉사할 때였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산다는 고3학생이 왔다. 듣고 보니 지난 2년 담임에게 호소했다가 돌아온 건 더 호된 폭력뿐이었단다. 그래서 선생님이 아닌 무료봉사상담을 찾은 게다. 너무나 엄청난 사연들이 기가 막히는 야만인이며 인면수심이다. 학교 급식에서 식판 나르기와 빵을 사다 나르는 빵셔틀은 기본이고, 믿기지 않는 잔인한 행위들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잔인성이라 꼭 해결해야겠다는 약속을 했다. 며칠을 두고 고민 끝에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했다. 공연히 문제 키워서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그 아이 괴롭히는데 가담한 아이들 8명과 아이들 부모 8명을 동시에 교장실로 불렀다. 그 자리서 나는 협박 같은 성토를 했다.

"저는 인간사회에서 가장 경멸하는 사람이 약자 앞에서 군립하고 강자 앞에서 손 비비는 사람입니다. 짐승보다 잔인한 행위가 이 학교에서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들의 미래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내용을 알면 여러분도 기가 막힐 겁니다. 식판에 반찬 남은 것 땅바닥에 때기치고 먹으라고 할 때, 깨끗하게 핥아 먹지 않으면 초죽음이 되도록 발길에 차이고 짓밟히는 고통보다 얼른 주어먹고 화장실가서 토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남녀 공학인 학교에서 학년 전체가 보는 앞에서 당하는 수모보다는 그래도 남자 화장실서 변기 물 먹는 쪽이 덜 창피하다는 말에 기가 막혔습니다. 여러 번 극단적인 선택으로 학교 옥상에 올라갔지만 아들바라기 엄마가 너무나 불쌍해서 그냥 내려오곤 했다는 말에 저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만일 이 모든 사실을 유서로 남기고 학교에서 극단적인 불상사가 있었다면 여러분들은 살인입니다. 학생들 대답하세요. 지금 내가 한 말 중에 거짓이 있나요?" 고개 숙인 아이들은 없다고 했다. 부모들 앞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시킨 것이다.

"여러분들이 모르고 있는 중요한 현실은 약자 앞에서 군림하던 얘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결국 낙오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이든, 공무원이든 어딜 가도 얘들이 군림할 약자는 더 이상 없어요. 발붙일 대상이 없다는 말입니다. 과거를 숨길 수 없는 네트워커 시대에 대학에서도 오히려 경계해야할 대상이 되고 따돌림을 받는 거지요. 이런 경우를 여럿 상담 했습니다."

지면으로 다 표현은 못했지만 눈물 섞인 내 울분에 모두 같이 눈물을 닦았다. 교장선생님께서 "너희가 저지른 행위들이 큰 잘못이 아니다 싶으면 부모님과 같이 나가도 좋다." 전원이 고개 숙인 채 앉아 있었다. "너희들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친다면 지금 혁이를 불러 올 테니 무릎 꿇고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해라. 부모님들과 나에게도 잘못이 크니까 우리도 진심 사과 하겠다." 부모님들께 어떠시냐고 묻자 다들 면목이 없다며 그러자고 했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소설가

그렇게 해서 스물세명이 혁이 앞에서 사과를 하고 눈물바다가 되었다. 부모님들 중에는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고 하신 분도 있다. 가해 학생 부모님 도움으로 대학 졸업하고 지금은 어엿한 공무원이 되어서 가끔 부부가 같이 나를 찾아오곤 한다. 올바른 인성을 쌓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이치를 전하고 싶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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