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철원 국립괴산호국원 현충선양담당

박수량, 황희, 맹사성을 조선시대 3대 청백리라고 말한다. 그 분들의 발자취를 통해 다시 한 번 위대한 삶을 재조명하고 인생의 지표로 삼았으면 한다.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청백리로 알려진 오리(梧里) 이원익 선생의 삶을 소개하고 청렴한 삶이 어떤 것인가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인조 9년, 승지 강홍중을 보내어 이원익을 문안한 뒤 "그가 사는 집이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강홍중은 "두 칸 초가가 겨우 무릎을 들일 수 있는데 낮고 좁아서 모양을 이루지 못하여 무너지고 허술하여 비바람을 가리지 못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재상이 된 지 40년인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니, 청렴하고 결백하며 가난에 만족하는 것은 고금에 없는 것이다. 내가 평생에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은 그 공로와 덕행뿐이 아니다. 이공(李公)의 청렴하고 간결함은 모든 관료가 스승 삼아 본받을 바이다."라고 말하며 5칸짜리 집을 하사하였다고 하니 선생이 얼마나 청렴한 분인가를 알 수 있다.

또한 선생은 "세상사람 중에 형제가 화목치 못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부잣집에서 그러하다. 이는 재물이 있으면 다툴 마음이 생겨 천륜을 상하게 하니 재물이 바로 빌미가 된다는 것을 알겠다. 자손들은 절대로 옳지 못한 재물을 모으지 말고 불인(不仁)한 부(富)를 경영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농사에 힘써 굶어 죽는 것을 면하면 옳을 뿐이다"라고 유언하셨다.

먼 훗날 선생에 대해 다산 정약용 선생은 글을 통해 그 위대함과 청렴함을 찬양하였다고 한다. '나라의 안위가 공에게 달려있었고/백성들의 잘 삶과 못 삶도 공에게 달려있었네/왜구들의 진퇴도 공에게 달려있었고/나라의 윤리와 도덕이 공에게 의존했었네'

청백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가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난할지라도 부정한 돈을 탐하지 않고 가진 부를 기회와 권력을 쉽게 얻기 위해 악용하지 않는 공직자가 되어야 한다.

정약용 선생은 인자(仁者)는 인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知者)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는 공자의 말을 빗대어 '청렴한 자는 청렴함을 편안히 여기고 슬기로운 자는 청렴함을 이롭게 여긴다'라고 하셨으며 '지혜가 원대하고 생각이 깊은 자는 그 욕심이 크기 때문에 염리(廉吏)가 되고 지혜가 짧고 생각이 얕은 자는 그 욕심이 적기 때문에 탐리(貪吏)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며 청렴을 강조하지 않으셨던가.

최철원 국립괴산호국원 현충선양담당
최철원 국립괴산호국원 현충선양담당

새로 공직자가 발탁이 되면 인사 청문회를 통해 이따금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이 문제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공직자가 이원익 선생처럼 청렴한 생활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한다면 깨끗하고 청렴함 대한민국이 되는 데에 한발 짝 다가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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