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코로나19 사태 이후 바뀌고 있는 인식중의 하나가 국가의 역할에 관한 문제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권력의 비대화가 가져올 여러 문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중국은 개인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해 주민감시에 최대한 활용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안면인식 기술로 개인의 동선을 추적했다. 캄보디아는 코로나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은 격리조치를 위반하면 사살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사태는 국가권력이 개인의 사생활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느냐에 대한 숙제도 남겼다. 국가권력의 사생활 개입 정도에 따라 국가 간 방역결과가 달라졌다는 점에서다. 예컨대 서구권이 코로나 통제에 상당한 혼란을 겪은 반면, 일본을 제외한 중국, 한국, 대만, 싱가폴은 비교적 빠르게 대처하는 양상을 보였다. 물론 여기에는 의료 시스템의 효율성도 작용했다. 그럼에도 빠르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사생활과 동선추적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서구사회는 개인과 사생활을 중시하는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역봉쇄는 했지만 개인의 사생활과 같은 동선까지 추적하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았다. 특히 스웨덴은 사회적 거리두기만을 강조하면서 일상생활을 그대로 유지했다. 반면 권위적인 동양권은 개인보다는 집단성을 중시하는 편이다.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 중국, 대만 등은 개인의 사생활 추적해 공개하는 것쯤이야 당연하게 여겼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지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다수는 개인의 사생활과 동선을 낱낱이 공개하는 문제가 무슨 대수냐는 것이었다. 위험에 대한 공포가 개인에 대한 통제를 쉽게 용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다. 히브리대학의 하라리 교수는 향후 많은 국가들이 개인과 시민을 강하게 통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경고했다. 전체주의적 감시와 통제가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면 코로나 사태가 극복되더라도 이런 감시의 흐름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기로 한 캄보디아가 코로나 문제가 정리된 이후 이런 조치들을 쉽게 해제할 수 있을까. 사생활 침해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긴 국가들이 또 다른 상황에서 그것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던진 셈이다.

일부에서는 감시와 통제가 지금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루어질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가 개인과 사회를 감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시민들은 서서히 정부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 집단 앞에 한 개인은 무력할 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국가권력은 이를 놓치지 않는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는 국가권력이 순식간에 거인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할 수 있다.

개인은 모두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집단적 문제가 되면 모두가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요구한다. 여기에 이의를 달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집단적 분위기에 눌려 입을 닫거나, 수동적 인간이 되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여러 나라의 경우에서 보듯, 코로나에 대처하는 문제는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 속에 어른거리는 '빅브라더'의 그림자를 우리는 이미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그 수단과 방법이 모두 합리화될 수는 없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자유가 무엇인가를 뜻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라고 했다.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새겨봄직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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