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가깝다는 것은 거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극복하는 것이다.'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 나오는 말이다. 거리가 가깝다고 가까운 것이 아니라 거리를 극복하기 위해선 마음이 통하면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난로처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대하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이 새삼 생각난다. 사람 관계란 멀리 하면 서운한 감정을 가진 채 소원해지고, 너무 가까이 하다 보면 하루아침에 실망하여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이 오해든, 배신이든,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실망은 더 큰 법이다.

참새나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새가 나무나 줄에 앉을 때 서로 어느 정도의 일정한 거리를 둔다. 나중에 날 때 서로 날개가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람들에게도 최적의 대인거리라는 것이 있다. 너무 가까이도 안 되고 너무 멀리해도 안 되는 거리. 그것을 가리켜 서로의 존엄성을 위한 '배타적인 공간'이라고 부른다.

적절한 '거리'를 두 사람 사이에 묶여 있는 고무줄에 비유하기도 한다. 두 사람 사이의 고무줄은 어느 정도 팽팽함을 유지하고 있을 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최적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어느 한 쪽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고무줄은 느슨해지고 관계에 빨간불이 켜진다. 반대로 한 쪽이 너무 멀리 간다면 고무줄은 끊어질 정도로 팽팽해지면서 관계의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

세상을 살면서 적당한 처신으로 산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녹녹한 일이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 라는 우화가 있다.

고슴도치들은 날이 추워지면 추위를 막기 위해 서로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가시에 찔려 놀라서 떨어진다. 하지만 곧 추위를 느끼고 다시 가까이 다가가지만 이내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피하려 다시금 떨어지고 만다. 이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어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거리를 찾아내 행복해진다는 이야기이다.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고슴도치들은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적절한 거리'를 찾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려주는 우화이다.

옛 선인들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즉,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고 했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를 항상 유지하는 일이다.

티베트의 수도승 '아나가리카 고빈다'는 "산(山)의 위대함은 거리를 두어야 보인다."고 했다. 이는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실망을 주거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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