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얼마전 저녁이 되어 사무실에서 집에 들어오니 여덟살된 손자녀석이 내일 태권도 승급심사가 있다고 하여 제깐에는 소리를 지르며 발차기 등 연습에 분주하다. 빨간띠인데 네일 합격되면 검빨띠가 된다고 제법 걱정하는 눈치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좀 잘 지켜봐 달라고 한다. 마치 연습을 마치 실전처럼 하고 있다. 연습이 끝난 후 "할아버지, 나 어때?"하며 묻는다. 나는 그 녀석에게 "참, 잘하는 구나. 내일 분명히 합격이야, 태권도하는 것을 보니까 공부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겠어, 열중하는 모습에 이 할아버지가 감동받았거든"하며 칭찬해 주었다. 그 녀석은 "그래? 정말?"하며 되묻곤 한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할아버지 말씀이 제깐에도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80년대 초 일선 중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근무할 때 국어 선생님들 중 거의 막내라 학교의 입학식과 졸업식때 교장선생님의 식사 작성을 도맡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글은 참 쓰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개성에 따라 진솔하게 표현하는 문예적인 글이 아니라 식사문으로 실용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의 입장에서 써야되기에 무엇보다도 교장선생님의 마음을 읽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글이기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여러 날 고민하여 최선을 다하여 쓴 글이 교장선생님께서 쾌히 결재해 주셨을 때 모든 괴로움은 얼음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더구나 결재해 주시면서 교장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지금도 뇌리를 스친다. "이선생님, 참, 수고 많이 했어요. 최고의 걸작품이예요. 어떻게 이처럼 내마음을 잘아서 표현했는지? 놀랐어요. 어느 선생님도 이 식사문 쓰기만은 쉽지 않게 생각하여 차라리 다른 업무분장 한가지를 더 맡겠다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아무 불평없이 잘 써 주어서 고마워요"하며 인정해 주셨다.

물론 아직 교단 경력이 그리 많지 않는 나라 부족함이 많이 있었겠지만 격려차원에서 하신 말씀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말씀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고 나아가 무엇이든지 해 낼 수 있다는 큰 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무릇 인간은 남에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자기의 어떠한 종류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는 일은, 자기가 생존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일로서,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 다시 말해 자신감이나 자부심을 갖게 함으로써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하고 삶의 목표까지 생기게 만드는 기제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정 사역자 제임스 딥슨의 간증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가필드 고등학교 조니(johnny)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둘이 있었다. 한 아이는 모범생이고 다른 아이는 말썽꾸러기였다.

일 년에 한번씩 부모님과 상담하는 날이 있었는데 조니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저의 아들 조니의 학교생활이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저희 반에 조니와 같은 아이가 있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이 아이로 말미암아 온 반 학생들이 격려를 받습니다.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릅니다"라고 했다.

그 다음 날 선생님을 찾아 온 조니는 모범생 조니가 아니라 말썽꾸러기 조니였다. "선생님, 어제 선생님께서 우리 어머님께 해 주신 말씀을 잘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저를 인정해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그렇게 인정해 주신다고 하니 저는 선생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날 평생 처음으로 숙제를 해 왔다. 그리고 3개월 동안 계속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전교에서 가장 성적이 많이 향상된 아이로 상을 받았다. 6개월 내에 말썽쟁이 조니는 반에서 3등 내에 드는 모범생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상대방을 인정하면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 그들로 하여금 마음껏 날개짓을 할 수 있도록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처럼 상대방을 인정하는 한 마디의 말이 상대방의 자신감은 물론 마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한다. 무릇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 상대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인생의 물줄기는 바람직하게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적의 힘을 발휘하게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