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삶에서 친구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핵가족 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좋은 친구를 만나 잘 된 사람, 나쁜 친구를 만나 망가진 사람. 어떤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려 지내느냐 따라 그 사람의 인생과 삶의 빛깔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친구를 두 번째 자기 얼굴이라 하는가 보다. 지금껏 살아 온 세월 동안 사남매를 키우고,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친구와 사귐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친구와 술은 묵을수록 좋다는 속담처럼 진실 된 마음을 나누고 함께하면 힘이 되는 친구.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며 믿음을 깨지 않는 한결같은 친구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적인 인생을 산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람결에 향기 속에 묻어나는 우정의 숨결로 이어진 50년지기 친구들. 젊을 땐 아이들 키우느라 서로의 일상에 바빠 만나지 못했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은 여인."이제 그녀들은 마음의 여유를 찾아 친구가 보고플 땐 언제든 달려갈 수 있다.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논어의 말을 굳이 들지 않아도 벗이 있다는 것이 감사고 행복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죽마고우 셋이서 색다른 하루를 보냈다. 진주. 청주. 서울 흩어져 사는 우리들은 청와대와 광화문 덕수궁이 내려 보이는 서울 한 복판 전망 좋은 방에서 만났다. 동갑내기 쥐띠부인들이 회갑기념여행을 호캉스로 준비한 것이다. 호캉스는 '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로 호텔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의미다. 호텔 내 부대시설을 즐기며 느긋하게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가진 하루는 즐거움 그 이상이었다. 아침 식사 중 바라 본 창밖 시청 건물에 걸려있는 시구(詩句) 또한 마음에 확 들어왔다."뜨거울수록 새 하얀 입김. 그대가 얼마나 따듯한 사람이면."함께 자고 함께 먹으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수다 삼매경.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한적한 남대문 시장에서 호떡 만두 오뎅 튀김 떡볶이를 먹으며 가벼운 쇼핑을 하는 호사를 누리기까지 했다. 친구들이 있어 즐거웠고 함께 회갑 맞이함을 자축하는 화려한 외출이었다.

오래 사귄 친구는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많은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소녀시절 마음의 격동기를 함께한 시간이라는 보물만큼 값어치 있는 우정은 다시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함께 있을 땐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이 호기(豪氣)를 부리던 우리들. 그리 길지 않은 인생길을 친구와 더불어 같이 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지초(芝草)와 난초(蘭草)는 둘 다 향기로운 꽃이다, 맑고 깨끗하며 높고 훌륭한 인품을 가진 두터운 벗 사이의 사귐을 이르는 지란지교(芝蘭之交). 에세이 속 지란과 같은 친구가 가까이에 살고 있다면 참 좋겠다.「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슬리퍼를 끌고 찾아가도 좋을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그런 친구.」

한결같은 우정은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다시는 움직이지 않듯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변함없는 친구. 먼 훗날 그 나무 그늘 아래서 우리 아이들이, 다음세대 누군가가 편히 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