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내 손자는 이제 만 3세 7개월이다. 어린이집을 다닌다. 말은 잘하지만, 발음이 불분명한 때가 더러 있다. 글은 아직 본격적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도 아는 숫자와 글자는 꽤 많다. 그 손자와 이틀간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그 길에서 배운 게 많다. 신호등 잘 지키기, 나쁜 말 안 하기 등, 어린이의 순진함에서 나오는 반응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 잘 가르치고 돌보는 것 같다. 온종일 마스크도 잘 끼고 있다. 조그만 일에도 즐거워하며 환호한다. 비어(卑語)는 사용하지 않고 어른들이 비슷한 말을 하면 즉각 반응한다. 어쩌다가 내가 뉴스를 보다가 답답한 마음에 격한 말을 하면 여지없이 끼어들어 한마디 한다. "할아버지, 왜 '아이 씨'라고 해요?" 운전하다가 노란불에 그냥 지나치면 바로 비판한다. 노란불인데 왜 그대로 지나치느냐고. 때로는 불가피하게 노란불에도 지나가야 함을 설명해서 이해시킨다. 혹시 어른들이 대화 도중 톤이 높아지면 즉시 개입한다. "인제 그만!" 손자가 부끄러움을 가르친다.

짧은 여행 기간이지만, 이렇게 손자에게 배우는 게 많다. 그러면서 되돌아본다. 60여 년 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이 죄와 더러움에 오염되었는가. 저 아이와 같이 순진하게 될 수는 없을까. 어린이 같은 마음. 일찍이 예수님은 어린이같이 순진하고 솔직하고 겸손한 마음이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18장 3절 "나는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어린이는 단순하다. 계산하지 않는다. 의심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한다. 겉과 속이 똑같다. 쉽게 믿는다. 쉽게 따라 한다. 쉽게 배운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하지 않는다. 한 가지씩 행한다. 어린이는 몸으로 사랑한다. 가벼운 것에도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그런데 어른 된 우리는 어떤가. 남이 내게 맞춰주기를 원한다. 남을 인정하기보다는 내가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남을 흠집 내기에 바쁘다. 이해하기보다는 쉽게 의심한다. 그리고 불안해한다. 크고 작은 상처들을 주고받기에 바쁘다. 가야 할 길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 최악을 피할 뿐, 최선의 선택을 못 한다. 우물쭈물 어정쩡한 태도로 살면서 안정을 추구한다. 공생을 말하고, 나눔을 말하며 사랑을 말하지만, 정작 실천은 잘 못 한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정작 행복하게 느끼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나이 듦은 무엇인가. 나이 드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거다. 그것은 곧 성숙함이다. 성숙함은 곧 언어와 행실로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면 오히려 점점 더 거칠어져 가는 것 같다. 참지 못한다. 작은 것에도 불평한다. 칭찬하지 못한다. 비난하고 비판하기에 바쁘다. 점점 자신에게만 천착한다. 이웃에 대한 돌봄이 없다. 배려가 없다. 오직 나와 내 가족, 내 속한 집단밖에 없다. 내 이익에 매달려 사리판단을 그르칠 때도 있다. 내일보다 오늘에만 집착한다.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손자와 며칠 지내면서 이렇게 죄로 오염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한다. 아이는 백지와 같다고 하지 않던가. 내 손자가 그 백지 위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길 소원한다. 나도 완전히 돌아갈 순 없지만, 네 살짜리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다. 솔직하고 순수하고 겸손한 생각과 언어, 행동을 회복하길 희구한다. 평소 좋아하고 그대로 되고 싶은 성구(聖句)가 있다. "나의 반석이시오.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생각이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하는 시편 19편 14절 말씀이다. 어린이처럼 생각하고, 어린이처럼 말하고, 어린이처럼 행동하고, 어린이처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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