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성낙수 시인

주위 가까이에 올바른 정의가 없으면 아무리 자유가 있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 편이 하는 것은 다 옳고 상대편이 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단정해 치부하고 있으니, 잘 잘못은 누가 봐도 다 있는데 내 편과 상대편에 따라 잣대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한 정권이 오래 못가는 것은 정의가 죽었기 때문이며 집권자 스스로 정의를 없애거나 자기편만 들다가 정의를 죽여 끝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자기편에 보다 더 엄격하고 상대편에 너그럽게 나갈 때 정의는 살아 있게 된다. 오래 해 먹으려 욕심 부리지 말고 정의를 실천하면 된다. 자신은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 하면서 괜히 공정타령, 정의타령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열심히 일한 자가 혜택이 적고 놀고먹는 자들이 많은 혜택을 받는 그런 사회는 정의가 없는 나쁜 사회인 것이다. 인권의 평등, 기회의 평등 등 다 좋지만 다함께 열정으로 일한 대가가 공평해야지, 일은 안 하고 대우만 평등을 부르짖는 것은 정의가 아닌 것이다. 특히, 진영 논리에 따라 무조건 옳고 그름이 판단되는 정의는 분명 정의가 아니다.

상대편을 위해 해줄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보수들이 걱정하고 있는 몇 가지에 관심을 보여주면 된다. 자유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많을 수 있다. 그래도 상대편은 자유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고, 너무 친북·친중으로 가는 것에 걱정이 많다. 이것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면 대립할 예민한 각은 많이 해소 될 것이다.

상대편이 요구 한 것을 들어주면 패하는 것으로 착각해 대립각을 갈수록 심하게 세우게 된다. 그래서 자신만의 아집에 빠져 보다 강한 색깔을 띠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정치사의 고질병이자 현실인 것이다. 상대편은 일체 존재하지 않고 오직 내 편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 되어 옆에는 늘 내 편만이 편하게 있을 뿐이다.

보편적인 생각으로 외연을 넓혀야만 기반이 튼튼해져 안정적인 집권이 가능하게 된다. 내 편만의 싸움으로 쉽게 이길 수 없다. 중간자들의 도움이 있어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이기는 것이 정의가 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지는 것이 정의라 할 수 없다. 정의는 승패와 아무 상관이 없다. 정의로워야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정되게 유지 되는 것이다.

성낙수 시인
성낙수 시인

대부분 비판을 잘하던 사람들은 유감스럽게 비판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올바른 비판조차도 역겨워하고 있다. 그래서 신선한 발전이 없으며 아집에 빠져 들게 된다. 특히 공정과 정의를 입으로 떠벌이는 사람들의 다수가 공정과 정의의 개념조차 모르고 있어 아쉽다. 이제는 모든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았으면 한다.

정의롭기 위해선 공평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하며 특히 상대편이 볼 때 공명정대해야 한다. 내 편만의 시각으로 보는 공평을 정의라고 하는 것은 가장 무식한 것이다. 내 편만이 아닌 상대편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오랜 집권이 가능하다. 내 편만으로 굳건하게 쌓은 성은 언젠가는 끝내 상대에게 무너지고 말게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