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시선 수필가·광혜원고 교장

요즘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일상이 됐다. 코로나 19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하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꺼려지니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탄다. 미호천은 언제나 가도 좋다. 하늘은 탁 트여 있고,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아담한 집을 지어 쫙 펼쳐놓는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조그만 거인이 돼 구름에 달 가듯이 두 바퀴로 천천히 달린다.

옥산 소로리에서 미호천으로 나오면 잠시 망설인다. 동쪽으로 갈까, 서쪽으로 갈까. 결정은 순간에 이루어진다. 마음 끌리는 대로다. 언젠가는 핸들을 동쪽으로 틀어 무심천 쪽으로 향했다. 긴 다리를 건너 우드볼장을 지나, 유유히 흐르는 물길을 따라 동남쪽으로 달린다. 가다 보면, 푸른 옷으로 갈아입은 갈대숲이 군무처럼 나타난다. 정말 장관이다. 경치에 취해 아무 생각 없이 페달만 밟는다. 어디서 덜커덩 쿵! 하면서 폭음이 울린다. 앗, 다리 위에 충북선 열차가 지나간다.

이쯤 오면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지만, 걷기를 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또 다른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모습이나 행동을 보고 본받을 수 있고, 스스로 고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식 복장을 하지 않았다. 그냥 평상복 정도의 옷을 입고 탔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결같이 알록달록한 라이딩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궁둥이에 뭔가를 댄 이상야릇한 패딩을 한 바지에다 꽉 끼는 듯한 복장이다. 어이쿠, 저건 망측해서 못 입겠다 하고 미루다가 결국은 사고야 말았다. 그런대로 입을 만했다.

와, 무심천이다. 무심천만 오면 나는 그냥 마음이 무심해진다. 유유히 흐르는 물도 좋지만, 넓은 천에 푸른 갈대와 온갖 풀이 어우러진 풍경이 참 좋다. 거기다 물 위를 노니는 청둥오리, 열애라도 하는 양 서로 마주 보며 속삭이는 흰 두루미 한 쌍을 보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때다! 어디선가 그윽한 종소리가 울린다. 해는 이제 서쪽으로 떨어져 서서히 물들고 있는데. 보니, 용화사에서 울리는 종소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가. 바로 저녁 예불을 위해 범종을 울리고 있었다. 이런 뜨거운 울림이 있나. 범종 소리는 전통 사찰이나 가야 들을 수 있다. 아, 얼마 만에 듣는 그윽한 저녁 종소리인가.

자전거를 멈추고 그냥 앉아 종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 가슴을 파고든다. 저 울림은 무슨 의미일까. 무심천에 울려 퍼지는 범종이라. 저녁이니 분명히 33번을 울리리라. 절에서는 예불을 드릴 때 사물(법고·운판·목어·범종)을 친다. 이 중 범종은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을 친다. 이는 불교의 우주관과 관련돼 있다. 불가에서는 사람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삼계, 즉 욕계·색계·무색계의 무한한 세계가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삼천대천 세계라고 할까. 그만큼 우주는 광활하다는 이야기다. 범종을 울리는 것은 사람뿐 아니라 한낱 미물까지도 품는다는 뜻이다.

문득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가 나그네를 무심하게 한다. 그것도 무심천에서! 무심천에서 건져 올린 일곱 미륵 부처님이 뭇 중생을 위해 무심 법문이라도 하는 걸까. 아, 무심이 무얼까. 무심이라. 순간, 무심이 화두가 된다.

최시선 수필가·광혜원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광혜원고 교장

<약력>
▶2006년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충북수필문학회·청주문인협회 회원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내가 묻고 붓다가 답하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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