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씨름 부흐 / 출처 세계무술연맹
몽골씨름 부흐 / 출처 세계무술연맹

마르코 폴로의 기록

이탈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는 17세가 되던 1271년 고향을 떠나 아시아를 탐험하고 1292년 돌아왔다. 그는 원나라에서 관리로 일하면서 17년 동안 중국의 여러 지방을 비롯해 몽골, 버마, 베트남까지 다녀왔다. 그가 쓴 '동방견문록(원전은 Divisament dou Monde)'에는 씨름을 잘하는 몽골의 한 여전사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몽골씨름을 '부흐(Bokh)'라 한다. 이 씨름은 다른 민족국가의 씨름과 마찬가지로 몽골에서도 남성들의 상징이고 우수한 장수를 선발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일부 여성지도자들이 있긴 했지만, 여성이 남성을 상대해 씨름으로 이기고 군사력까지 갖춘 전사로서의 기록은 보기 드문일이다. 마르크폴로는 그녀를 적의 고지에 올라 매가 닭을 잡는 것처럼 쉽게 포로를 잡을 수 있는 최고의 전사로 기록했다.

몽골 여전사 쿠툴룬(Khutulun, 1260-1306) 이야기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전통남성씨름복장을 입고 남자들과 씨름을 하곤 했다. 몽골씨름은 서로 상대방의 팔을 잡고 상대방의 몸을 쓰러 넘어뜨려야 승부가 나는 씨름이다. 그녀는 키가 컸고 강한 남성들과 대적하기 위해 훈련했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 카이두(Kaidu,1230~1300)는 그녀가 11살이 되던 1280년에 중앙아시아에서 중앙시베리아 고원을 비롯해 인도까지 통치한 인물이다. 마르크폴로가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오랫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중에 바닷길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카이두가 점령한 중앙아시아 때문이다.

남성과의 씨름시합

쿠툴룬이 10대 후반에 이르자 그녀의 아버지는 결혼할 상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몽골 여성들은 결혼할 남성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공주였던 쿠툴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결혼을 외교적 준비로 여겼고, 남편후보자 역시 자신이 선택하길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당시 몽골이 일부다처제여서 부부간의 사랑이나 존중의 여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자신의 남편은 자격이 있어야 하고 이를 증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자격은 바로 그녀와 씨름을 해서 이긴 남성과 결혼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카이두는 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여기에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씨름을 하기 위해서는 말(馬) 100마리를 가져와야 한다고 조건을 하나 더 추가했다.

수많은 남성들이 그와 씨름시합을 했다. 그러나 모두 패했고, 말 1만마리를 획득할 때까지 남편감은 나오지 않았다. 남성들과의 씨름이야기중에 마크로 폴로의 기록에는 가장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1280년경 이웃 왕국의 부유한 멋진 왕자가 1천마리의 말과 함께 도전장을 내고 나타났다. 군중들이 모여 둘의 시합을 봤는데 먼저 왕자가 공격해 쿠툴룬 공주를 제압하며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남편감을 찾았나 싶었으나, 공주가 이를 반격해 왕자를 바닥에 메치며 역전승을 한 것이다.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은 아쉬워 하며 쿠툴룬이 영원히 독신으로 살고 싶어한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쿠툴룬을 그린 뮤지컬 ‘투란도트’ 포스터
쿠툴룬을 그린 뮤지컬 ‘투란도트’ 포스터

뮤지컬 '투란도트'의 주인공

그 후 쿠툴룬의 결혼에 대한 기록은 없다. 쿠툴룬은 아버지와 함께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녀가 40대 초반에 아버지 카이두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카이두는 병석에서 사전에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가장 강하고 리더십이 있는 지도자로 쿠툴룬을 인정했지만, 카이두가 세상을 떠나고 형제들은 쿠툴룬을 질투하며 암살을 음모했고, 몽골의 지도자가 되기전에 살해당했다.

허건식 체육학 박사, WMC기획경영부 부장
허건식 체육학 박사

이 이야기는 몽골과 중국전역에 퍼졌고, 그녀가 남편을 선택하기 위한 씨름이야기는 가장 인기있는 이야기로 전해진다. 그리고 1800년대에 '투란도트(Turandot)'라는 현대 오페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영감을 주고 있다. 이처럼 여전사 쿠툴룬의 이야기는 몽골에서 씨름인이자 전사로 기억되고 있으며, 이야기가 변질되기는 했지만, 서양의 뮤지컬 작품에서는 사랑에 굴복한 자랑스런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과 영화로도 다시 부활하고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