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파헤쳐 놔 비에 속수무책… 산사태로 과수원 흙더미 변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이 흙밭으로 변해버린 박철선 충북원예농협 조합장의 과수원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이 흙밭으로 변해버린 박철선 충북원예농협 조합장의 과수원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정말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충주시 산척면 과수농업인 A씨는 수마가 할퀴고 가 온통 진흙밭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과수원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A씨는 지난 5월 발생한 과수화상병 피해를 입어 애써 가꿔온 사과나무를 모두 땅속으로 매몰한 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콩을 재배하기 위해 밭을 일궜다가 이번에는 비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았다.

충주시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최초로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산척면은 전체 과수재배농가 147 농가 가운데 142농가가 과수화상병 피해를 입어 164개 소를 매몰처리했다.

과수화상병 피해 면적으로도 산척면 전체 과수면적의 80%를 넘어 이 지역의 과수재배농가들은 거의 대부분 과수화상병 피해를 본 셈이다.

현재 매몰처리보상 중으로 이들은 과수화상병으로 인한 피해 보상도 받기 전에 또다시 비 피해를 입으면서 엎친데 덮친 격이 됐다.

특히 과수화상병 피해 보상이 지난해 정액보상에서 올해는 실비보상으로 바뀌면서 비로 인한 피해가 더욱 커졌다는 것이 이 지역 과수농가들의 주장이다.

A씨는 "농촌진흥청이 실비로 보상을 결정한 뒤 농민들이 반발하자 '타 작물 재배를 위해 밭을 조성할 경우, 실비로 보상해 주겠다'고 밝히면서 많은 과수화상병 피해 농가들이 앞을 다퉈 밭 조성에 나섰다"며 "밭을 만드느라 과수원을 모두 파헤쳐 놓은 상태에서 많은 비가 내리다 보니 속수무책으로 수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산척면의 경우, 지형상 대부분이 산지역서 산비탈에 조성된 과수원이 많다 보니 산사태나 토사유출 등의 피해가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정확한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 비로 산사태 등의 피해를 입은 과수원이 수십여 군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척면 과수화상병 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천영 씨는 "평지에 있는 과수원을 제외하고 산 아래에 위치한 과수원들은 거의 쓸려내려 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철선 조합장이 망연자실한 채 흙밭으로 변한 자신의 과수원을 둘러보고 있다.
박철선 조합장이 망연자실한 채 흙밭으로 변한 자신의 과수원을 둘러보고 있다.

5년 전 귀농한 과수재배농업인 홍준표 씨는 "저수지 위쪽에 위치한 과수원의 상황을 살피러 올라가다가 진입하는 도로가 무너질 것처럼 불안해 보여 다시 되돌아왔다"며 "이런 상태에서 비가 계속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어 거의 매일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박철선 충북원예농협 조합장도 과수화상병 피해에 이어 비 피해를 비껴가지 못했다.

과수농가들의 수장격인 사단법인 한국사과연합회장과 한국과수농협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그 역시, 산척면 송강리 상산마을에 있는 자신의 과수원이 과수화상병 피해를 입어 매몰 처리했지만 이번 비로 산사태가 과수원을 모두 덮치면서 흙밭으로 변해버렸다.

박 조합장의 과수원을 비롯해 산척면에 있는 과수원은 거의 성한 구석이 없을 정도로 처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일부 과수농가들은 삽자루를 든 채 엉망이 된 과수원에 나가 물길을 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이날도 어김없이 산척면에는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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