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은 삶을 산 여성독립운동가들, 충북서 만난다
불꽃같은 삶을 산 여성독립운동가들, 충북서 만난다
  • 이지효 기자
  • 승인 2020.08.09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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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여성플라자 1층 일원서 女의병장 흉상 등 역사 전시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 입구./ 이지효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 입구./ 이지효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대한민국 100년의 뿌리인 충북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됐다. 남성 중심의 독립운동사에 가려 오랫동안 조명되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는 자리가 전국 최초로 마련됐다. 이들은 독립에 대한 열망 하나로 민족의 아픔을 끌어 안은 채 불꽃같은 삶을 불태웠다. 광복을 맞이한 8월,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만나 그들을 기억해보는 것은 어떨까?

충북도가 전국 최초로 청주시 상당구 목련로 27(방서동 649-1)에 위치한 충북미래여성플라자 A동 1층에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을 마련했다.

전시실에는 충북을 본적으로 하거나 충북과 연고(출생지, 부모·남편 출생지, 남편 본적 등)를 갖고 유족의 흉상 제작 동의가 있는 2018년까지의 서훈대상자 10인의 흉상과, 2019년 이후 대통령표창을 받은 3인 등 총 16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전시돼 있다.

충북도는 2019년 3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여러차례의 전문가 자문회의, 유족방문, 고인의 생존시 사진 및 후손 사진 대비, 유족 만남의 날 등을 통한 엄격한 인물 고증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여성독립운동가의 흉상 제작은 정창훈 조각가가 맡아 천신만고 끝에 완성됐다.

충북도는 지난 3일 온라인 전시 개막(온라인 전시실 주소 : http://cbk.bizvion.kr/)을 시작으로 지난 5일 여성독립운동가의 유족을 초청해 조우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날 전시실을 찾은 박재복 독립운동가의 장남 내외와 막내동생, 손자, 증손자는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준 충북도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충북여성독립운동가 흉상 제작을 맡안 정창훈 조각가가 유족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지효
충북여성독립운동가 흉상 제작을 맡안 정창훈 조각가가 유족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지효

박재복 독립운동가의 증손자인 이승현(16)군은 "할머니를 사진에서만 보고 이야기만 듣다가 직접 와서 흉상과 자료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할머니를 본받아서 바르게 살고 역사를 더 잘 알아야겠다"며 증조할머니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전시 관람은 휴관일인 월요일과 설날과 추석을 제외한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가능하다.

전시실에 마련된 충북여성독립운동가들을 한분 한분 만나보자.

# 윤희순 (1860.06.25.~1935.08.01.) 한말 최초 여성의병장

본적은 충북 중원군(현 충주) 엄정면 신만리 740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1895년부터 1908년까지 춘천 등지에서 의병 투쟁에 참여했고 1911년 만주로 망명해 시아버지와 남편의 독립운동을 내조하며 대한독립단에 가입하는 등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 어윤희 (1880.06.20.~1961.11.18.) 굽히지 않는 만세운동의 투사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에서 태어나 1984년 결혼 3일만에 남편이 동학군으로 집을 떠나 전투 중 전사한다. 이후 1919년 2월 자진해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이로 인해 서대문감옥에 투옥됐다. 그 안에서도 3·1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해방 후 개성과 마포에 유린보육원을 설립해 사회복지사업에 힘썼다.


# 박자혜 (1895.12.11.~1943.10.16.) 단재 신채호의 뜨거운 동지

1890년대 입궁후 1910년 궁궐을 나와 명신여학교에서 근대 교육을 받았다. 1916년부터 1919년초까지 조선총독부 의원 간호부로 근무했다. 일본인의 간호는 하지 않겠다며 3·1운동 부상자를 치료하고 '간우회' 조직을 만들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됐다. 1920년 신채호를 만나 결혼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박재복 독립운동가 장남인 이종출씨가 어머니 동상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 이지효
박재복 독립운동가 장남인 이종출씨가 어머니 동상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 이지효

# 임수명 (1894.02.15.~1924.11.02.) '남만주 삼천' 신팔균 장군의 동지

본적은 충북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1912년 서울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할 때 신팔균 장군을 만나 1914년에 결혼했다. 신팔균이 베이징으로 망명하고 임수명은 항일비밀문서의 연락과 배포 등을 후방에서 지원했다. 이후 만주로 가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며 1924년 남편의 전사 사실을 알고 자결해 순국했다.


# 이화숙 (1893~1978) 임시정부 참여와 미주지역 독립자금 모집의 주역

최초의 이화학사로 1919년 대한애국부인회(상하이) 총회에서 회장이 되고 대 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다. 대한적십자회가 설립한 간호원양성소 1기 졸업자로서 자금을 모금했다. 1920년 파리 강화회의 참여 차 뉴욕에 있는 동안 독립운동가 정양필과 결혼 후 미국에 거주하며 수차례 독립자금을 출연했다.


# 연미당 (1908.07.15.~1981.01.01.) 중국내 여성독립운동단체 통합 주역

충북 괴산군 연병환의 장녀로 중국 룽징에서 태어났다. 1927년 김구를 보좌하던 엄항섭과 결혼 후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에 상해여자청년동맹 대표로 참가해 여성독립운동계 공동 항일연합전선 구축 운동을 주도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때 도시락 폭탄을 보자기에 싸줬다고 전해지고 있다.


# 오건해 (1894.02.29.~1963.12.25.) 임시정부 안살림 꾸려나간 어머니

청주시 보성오씨 집성촌 출생으로 추정되며 임시정부 재무차장 신건식과 결혼했다. 1926년 딸 신순호와 함께 남편이 있는 중국 상해로 가 임시정부 안살림과 독립운동가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위 박영준은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회고했다.


# 신순호 (1922.01.22.~2009.07.30.) 독립운동 명문가의 혈통 이은 전사

신건식, 오건해의 장녀로 충북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에서 태어났다. 1926년 어머니와 상해로 이동해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창군때 여군으로 입대해 총사령부에 근무했다. 해방후에도 한인 동포 귀국문제 처리를 위한 주화대표단 임무를 맡았고 고향의 가덕중학교에 사재로 '삼강도서관'을 건립해 기증했다.

충북여성독립운동가 흉상 제작을 맡안 정창훈 조각가가 유족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지효
충북여성독립운동가 흉상 제작을 맡안 정창훈 조각가가 유족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이지효

# 신정숙 (1910.05.12.~1997.07.08.) 전투·정보공작에 능한 여자 광복군

독립운동가 신조준의 딸로 태어나 음성 출신 장현근과 결혼했다. 남편이 독립운동 중 잠적하자 남편을 찾아 중국으로 가 조선의용대에 참여했다. 이후 충칭으로 가 김구의 비서로 근무했다. 1940년 한국광복군에 입대해 회계조장으로 활동했고 이후 정보선전공작, 포로심문, 정보수집 등 공작활동을 펼쳤다.


# 박재복 (1918.01.28.~1998.07.18.) 조선 노동자들 항일의식 깨운 선각자

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4년부터 1938년까지 군시제사 대전공장에서 근무했다. 동료 여성 노동자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발언을 하다가 체포됐다. 1941년 10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육군형법위반으로 금고 1년을 선고받고 전주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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