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김동우YTN충청본부장

언론인은 과연 진정한 지식인인가?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 또는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이 지식인에 대한 국어사전의 정의다. 지식인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아닐까? 그는 최고의 지식 채굴법으로 문답법을 제시했다. 질문의 선결 조건은 '스스로 무지(無智)에 대한 자각(自覺)'이다. 이른바 '너 자신을 알라'다. 델포이 신전이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소크라테스를 신탁했던 것은 그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문답을 통해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 방법으로 '귀납법과 산파술(産婆術)'을 제시했던 점에서다.

하지만 다소 의미심장하게 정의한 사람도 많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뛰어드는 사람'이라 했고,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지식인은 사회의 소금이 아니라 사회의 찌꺼기'라 했다. 독일 지식사회학자 칼 만하임은 지식인이 사회 전체를 위한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에 지식인을 '사회의 파수꾼'이라 했다.

지식은 주로 대화나 책, 체험 등을 통해 수용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다, 이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 지식인이다. 진정한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용한 지식에 대한 비판과 첨삭의 조건이 따른다. 수용한 지식을 그대로 또는 왜곡해 전달하는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다. 막스 논리에 따르면 지식인은 인간 의식의 영역인 상부구조를 담당하는 집단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식인은 자신 속한 계급, 특히 지배계급의 이익이나 입장에 종속이 불가피하다. 그 때문에 헤게모니가 탈취되거나 아예 없는 집단의 지식과 지식인은 무시되기도 한다.

여하튼 지식인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다. 언론인과 관련해 지식인을 설명한 학자 중 대표 격이 1930년대 이탈리아 공산당 창설자, 좌파의 기수, 사회주의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다. 그는 지식인을 두 가지로 구분해 '전통적 지식인(Traditional Intellectual)과 유기적 지식인(Organic Intellectual)'이라 했다. 전자는 당시 사회, 정치, 경제 상황 등 외부의 시대적 변수에 영향도 전혀 받지 않는 지식인이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지속가능한 지식을 보유하고 실천하는 사람 혹은 집단들이다. 주로 작가, 예술가, 철학자가 이에 속한다. 만약 사회가 붕괴해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가 그 사회를 지배해도 자신들의 지식을 왜곡하거나 다른 지식에 굴복하지 않는다. 특정 사회계급과 그들의 지식을 거래하지 않는다. 지식에 대한 지조가 철저하다. 지식인들의 유대감이나 정체성은 희박하다.

유기적 지식인은 '자본가 계급의 헤게모니에 맞서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고, 새로운 대항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데 봉사하는 사람'이다. 유기적 지식인은 부르주아적 세계관에 저항해 대항이데올로기와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질서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식인 집단인 셈이다. 유기적 지식인의 목적은 부르주아적 세계관을 프롤레타리아 세계관으로의 대치다. 이를 위해 유기적 지식인은 먼저 역할 수행을 위해 대중 속 깊이 들어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해야 한다. 유기적 지식인으로 대변하는 최적의 도구가 바로 언론이고 언론인이다.

그는 '언론은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변혁으로 이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이며, 언론인은 시민사회에서 사회변혁을 이끌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언론인은 사회 내의 지적인 운동과 조직을 추동하고 사회 전반을 감시하는 것이라 덧붙이고 있다.

과연 우리 언론은 지배계급에 대한 대항이데올로기를 창출하고 시민사회 속에서 그 대항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가? 그람시 말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언론에 '상업 정신'이 침투한 지 오래고, 언론인도 제4부의 자긍심이 퇴색되고 있다. 지배와 자본가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 이들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파괴하기는커녕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한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사회변혁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유기적 지식인들이 자본가나 지배계급과 결탁해 사회를 정체시킨다. 국가, 기업, 정부 기관 등에 유기적으로 봉사하고, 불량한 지식 판매자로 전락했다. 국가나 지배계급, 자본가 등 권력층에 더 비싼 가격으로 팔기 위해 과대 포장하거나 첨삭을 감행하고,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때로는 권력층에 지식을 거저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언론이 죽어야 나라가 살까?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