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간밤에 또 세차게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어 밖을 보다 못해 아예 집을 나와 비를 조금 맞아본다. 이제는 겁이 난다. 전에는 빗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릴 때도 있었고 그런가 하면 어디론가 무작정 멀리 여행을 떠나고픈 충동과 동경의 이미지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빗소리는 가슴을 조이며 걱정의 산물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장마는 기상관측 아래 가장 긴장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무려 최대 55일 안팎으로 늘어나게 된다고 하며 보도에 의하면 하구핏이 열대 저기압부로 바뀌면서 태풍영향권에 갇혀있던 수중기가 한반도 상공에 위치한 장마전선으로 유입, 장마전선 세력 강화로 집중호우가 내린다고한다.

이제 전국이 수마(水魔)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가 일어났다. 수십명의 인명피해와 수 천명의 많은 이재민을 낳기에 이르렀다. 길이 끊어지고 주택이 잠기고 진흙밭이 된 농경지에 과수가 송두리째 쓸려나가는 등 생활근간이 무너졌다.

우리충북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제천 또한 739.1㎜가 내렸다. 며칠전 제천 자원봉사센터 봉사대원과 가까운 붕양읍 장평리에 조금이라도 수해민들의 아픔을 나누고 싶어 봉사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비는 내렸지만 마다하지 않고 너무나 급한 일이기에 모두 우비를 입고 수해현장으로 나갔다. 가는 도중 도로는 침수되어 장화를 신지 않으면 안되었다. 장화를 신어도 비바람이 몰아치니 별로 소용이 없었다. 강가에 위치한 슬라브집은 아예 안방까지 침수되어 살림살이를 그위 언덕에 있는 과수원 저장고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더욱 가슴아픈 것은 그 언덕 과수원 밭이 과수 화상병은 물론 산사태로 인하여 매몰되었다는 것이다.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천 자원봉사 센터 십여명의 봉사대원들은 마치 자기집이 잠긴 것처럼 두팔을 걷어붙이고 비를 흠뻑 맞으며 세간 살이를 준비한 대형, 중형 비닐 봉투에 구분하여 차곡 차곡 싸서 쉼없이 나르고 또 날랐다. 어느 한분도 힘들어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속으로 정말 이분들은 봉사의 달인이구나 하며 존경을 넘어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왠지 얼굴이 닮은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보고 또 보아도 닮았다. 알고보니 엄마와 중학교 1학년 딸, 모녀 관계였던 것이다. 엄마도 감사하지만 학생이 너무 대견스러워 어떻게 이런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느냐고 물어봤더니 평소에 엄마의 봉사활동을 보고 감명받았는 데 이번에는 나도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 체험하고 싶어 선뜻 이자라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더욱 자랑스럽게 보였다.

두 모녀가 비를 맞으며 살림살이를 함께 나누는 모습이 마음 든든하기 까지 했다. 어디 그뿐이랴 자원봉사센터 직원 한분이 살며시 다가와 귓뜸 해준다. 선생님, 글쎄 며칠 전에는 내일 입대하는 청년이 수해 현장에 나가 비를 맞으며 봉사활동을 했어요라고 말이다. 가슴이 저미어 온다. "아니? 내일 입대해야하는 젊은 친구가 그렇게 했다는 것이지요?"라고 되물으니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소리를 듣자 우리 나라는 분명 미래가 밝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릇 자원봉사는 라틴어 'Voluntas(자유 의지)'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으며, 한자로는 '자기 스스로(自) 원하여서(願) 받들고(奉) 섬긴다(仕)'는 뜻이다. 즉, 자원봉사 활동은 어려운 이웃을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받드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40여일째 이어지고 있는 올해 장마로 적지 않은 이들이 좀처럼 복구의 의지를 갖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지경에 처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처럼 순식간에 비가 많이 내린 것은 처음입니다'라고 한 어떤 분의 말씀이 귓전을 때린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가슴이 시리다. 수마가 할퀴고 간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아픈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비를 맞으며 숨가쁘게 움직이는 중학생, 군입대를 하루 앞둔 청년의 봉사활동 그리고 연일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자원봉사대원분들이 소망의 빛이 되어주었다. 다시한번 아픈 마음을 나눈 모든 분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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