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에 빼앗긴 70년 터전… 빗소리만 들려도 몸서리

음성군 삼성중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방현권씨가 개인텐트 안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신동빈
음성군 삼성중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방현권씨가 개인텐트 안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신동빈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후드득 후드득...촤아아' 가늘었던 빗줄기는 삽시간에 굵은 장대비로 변했다. 체육관 앞 간이의자에 앉아 이 모습을 지켜보던 노모의 어깨는 하염없이 움츠러들었다.

음성군 삼성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시설 최고령 입소자인 이우석(89·여·용대리) 여사는 11일 오전 체육관 앞에서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생긴 습관이다. 하지만 무심한 하늘은 매일같이 비를 쏟고 있다. 이 여사가 집을 떠난 지 10일 동안 그랬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집에 못 간다는 거야. 오늘 내리면 하루 밀리고, 내일 또 내리면 이틀 밀리고. 18살에 시집와서 70년 살던 곳을 나왔으니...몸이 쑤시고 머리가 아파. 밥도 잘 못 먹어."

구순을 바라보는 그가 급격히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방역상황까지 준수해야 하는 탓에 몸은 더 지쳐간다.

"엊그제에는 결국 보건소 가서 약을 타 왔는데, 약 먹으려고 억지로 밥도 먹고 하지 뭐. 비가 안와야 마음이 편할 텐데 비가 계속 와서 큰일이지."

평생 빗물은 생명수라고 여긴 농부들에게도 장맛비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박만수(68·용대리)씨는 산사태로 긴급 대피한 그날(2일) 이후, 잠을 자다가도 빗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라 눈을 뜬다.

"눈앞에서 논이고 밭이고 다 쓸려갔는데, (삼성면) 용대2리 주민들한테는 이제 트라우마지. 체육관에서 자다가도 빗소리가 커지면 눈이 떠져. 이 기억이 올해만 갈까. 내년 여름에 비오면 또 그럴 거야."

주택 침수피해를 입은 방현권(61·대사리)씨도 같은 마음이다.

"집안에 물이 가슴팍까지 차올랐으니 말 다했지. 물이 무섭지 이제. 그래도 집에 가려면 치워야 되는데 끝이 없어. 비가 매일 오니 작업도 더디고..."

오전 내내 수해 복구작업을 벌이다 잠깐 체육관으로 돌아온 방씨는 한 평 남짓한 임시주거시설에서 급히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현재 음성 삼성중학교 체육관에서 생활하는 이재민은 29세대 59명(남31·여29)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산사태 위험'으로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음성군과 산림청 등은 비가 그치는 다음주부터 산사태 긴급 복구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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