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장병갑 정치부장

지난 1일부터 이어지는 집중호우로 전국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산사태로 쏟아지는 흙더미에 주택이 무너지고 넘쳐나는 물에 도로가 잠겼다. 다리가 떠내려가고 철도가 끊겼다. 전국 곳곳이 무너지고 주저앉았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하는 등 인명 피해도 속출했다. 물이 빠져도 복구는 요원하기만 한데 하늘이 뚫린 듯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은 물론 전국 모든 국민이 마음을 졸리며 야속하게 하늘을 쳐다 볼 뿐이다.

충북지역도 물 폭탄이 쏟아지면서 단양 음성 제천 등 중·북부지역에 수해피해가가 컸다. 충북도가 11일 현재 집계한 도내 피해액이 1천500억 원을 넘었다. 이중 단양군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단양지역은 이번 집중호우 기간 동안 500mm이상의 많은 비가 내려 3명의 인명피해(사망 1명, 실종 2명)가 발생했다. 특히 피해액만 450여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도내 자치단체 중 가장 피해액이 많은 것은 물론 도내 전체 피해액의 1/3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7일 발표한 도내 특별재난지역에 단양군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집중호우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단양지역 수해복구는 열악한 지방재정 상황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피해액을 최대 국비 70%안팎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단양군으로서는 나머지 피해 예산을 떠안기에도 버거운 상태다.

단양군민들에게는 깊은 한이 서려있다. 단양은 한강 유역에 자리 잡은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그동안 많은 수해를 입었다.

지난 1972년 8월 역대급 홍수로 단양지역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됐다. 당시 단양 지역에서 성한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곡식 등이 한창 자라던 논·밭은 흙으로 가득했다. 가축들은 떠내려갔고 도로는 물에 잠겼다. 인명피해도 커 95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거 같았던 재해는 지난 1978년부터 1981년까지 4년 연속 발행했다. 단양군민들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도 수해를 겪었다. 이어 1990년, 1994년 수해도 잊을 수 없다. 비만 내리며 홍수 등 재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결국 충주댐 건설이 추진됐고 댐이 완공된 지난 1985년 당시 단성지역에 있던 주민들이 지금의 단양으로 이주하면서 지금의 단양을 신단양으로 부르고 있다. 신단양 주민들 중 우리네 부모님 세대 상당수가 자신의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긴 실향민인 셈이다. 신단양뿐만 아니라 충북도내 곳곳에는 당시 단양에 거주하다 이주한 실향민들이 많다.

장병갑 정치부장
장병갑 정치부장

수재민들의 아픔을 모두 어루만질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어깨들 덜어주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돼야 한다. 특히 이번 수해복구는 근본적으로 추진돼 오랜 기간 단양군민들을 괴롭혀 온 수해피해로부터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것이 지역을 지켜온 단양군민들의 희생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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